아빠가 생각하는 임신 먹거리의 우선순위는 분명 엄마와 다를 수 있다.
셋. 입덧
아내에게도 임신 얼마 후부터 입덧이 시작됐다.
내가 알던 입덧의 정보라곤 고작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몇 가지 것들, 예를 들자면 신 음식의 냄새를 맡고 속이 메슥거린다거나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갑자기 싫어진다거나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 갑자기 당기는 정도였지만 아내의 입덧은 좀 달랐다.
우선 극심한 헛구역질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음식을 많이 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음식을 먹는 동안은 속이 편안했고 반대로 식사를 시작하기 전의 허기와 식사가 끝나면 찾아오는 포만감으로부터 거의 예외 없이 불편한 속을 느꼈다.
오죽하면 나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무언가 먹어서 입덧을 없애자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다른 집 남편들은 갑자기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지만 내 경우는 다 먹고 나면 불편해하는 모습을 어떻게 챙겨줘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좋아했던 음식 중에는 유독 커피를 멀리했다.
네스프레소의 펭귄 모양 커피머신, 드립 커피 용품, 원두를 가는 기계, 친구가 설치해준 간이 더치 머신까지 더 훌륭한 커피를 위한 아내의 노력은 결혼 내내 계속됐었지만 입덧이 시작되자 아내는 커피라면 향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카페를 가는 일이 종종 있어도 아내는 달달한 차 종류를 마시고 싶어 했고 커피는 멀리했다.
반면 신기하게도 아내는 나만 좋아했던 음식 몇 가지를 먹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그만 좀 먹고 싶다던 멕시칸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내던 날은 간조차 잘 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전화해 저녁 외식메뉴로 선택하는가 하면 너무 달아 싫다던 초콜릿이나 달달한 음료, 케이크와 같은 것들을 수시로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취침 전 집 근처 맥도널드에서 선데이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녀와야 하는 요구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핏줄이 맞나 보다 너스레를 떨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입덧이 계속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젠가부터는 다시 편안한 속이 되면서 입덧 에피소드도 마침표를 찍었다.
입덧이 끝나고 나자 아내의 입맛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대로 돌아왔다.
다만 임신을 하면서 몸에 열이 많아져 입덧과 상관없이 출산 전까지는 늘 시원한 음료나 탄산수 등은 종종 마시고 싶어 했다.
필요한 양 이상은 마시지 않던 물을 자주 찾게 된 것도 마찬가진데 나는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주량이 정말 바닥이었던 탓에 보통 술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지만 몸속 열기가 체질을 바꾼 것인지 가끔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난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나의 음식 태교 철학은
'무엇보다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였다.
임신하면 음식을 가리거나 조심하게 되는데 산모가 섭취한 영양분을 태아도 함께 공유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고 음식을 가리고 조심하게 되지만 나는 평소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먹느냐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산모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항상 건강을 위해 억지로 참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절히 먹고 차라리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자주 말해 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태교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보통의 산모들이라면 카페인이 있다며 멀리했을 커피를 아내는 매일 조금씩 맛보았고 목이 타들어가는 날은 가끔 무알콜 맥주를 마시거나 맥주 한 두 모금 정도를 마시기도 했다.
평소 좋아했던 매운 음식도 가끔 먹으러 갔고 임신 말기에는 아이가 커진다며 주변에서 말렸던 단 음식들과 과일 등을 피하지 않고 먹었다.
하지만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덕분인지 아이는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이나 기본적인 질병 없이 2.8kg의 몸무게로 40주 2일 만에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와 우리 세대를 비교해보면 지금은 정말 많은 부모들이 척척박사처럼 지식과 정보를 알고 공유한다.
그래서 임신 중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완벽하게 챙기려 노력하고 그만큼 조심해야 할 것들도 늘어났다.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비용은 얼마가 들어가던 태아에게 좋은 것 만을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불임에 힘들어하는 부부들은 더 많아졌고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은 더 늘었으며 이유 없이 유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더 많이 조심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임신과 태교, 출산에 대한 리스크와 고민까지 줄이지는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인간의 몸이 오랜 시간의 누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나쁜 것들을 걸러 낼 수 있고 안 좋은 것들로부터는 면역체계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위적으로 만든 좋은 환경이 아기들의 면역체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쪽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최고의 태교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태교를 하고 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힘겨움은 어쩌면 본인들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더 잘, 더 완벽하게 키우려 하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스트레스인 것이고 그게 부담이 되고 몸도 지치게 해서 마음까지 힘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고작 육아의 초반에 서있고 지금은 산후조리원에 앉아 틈틈이 이 글들을 쓰고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나도 충분히 느낄 만큼 육아는 길고 지루한 아이와의 줄다리기가 될 심산이 크다.
그러니 지치지 않고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도 아기만큼 지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고 원하는 것들을 챙겨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종종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곤 하는데 오늘 글의 마무리로도 적합해 보인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이륙하기 전에 승무원이 구명조끼 착용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절대 아이를 먼저 입히라고 하는 적은 없어.
그만큼 본인을 우선 챙겨야 남도 챙길 수 있고 아이 역시 마찬가지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