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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Jun 12. 2019

S3#29 테헤란 입성

19.06.03 새로운 만남 (월)

 동이 터오고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도시가 눈 앞에 나타난다. 다소 황량한 느낌이고 출근시간에 맞물린 7~8시 사이에 수도에 들어오니 차들이 꽉 막혀버린다.

 언제나 터미널 옆에는 식당이 거의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간단한 요기와 화장실 사용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기가 좋다. 정말 맛있는 빵을 하나 시켜 먹으며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실 어디서나 스마트폰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못할 것이 없는데, 유심이 필요하 그러려면 돈도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는 다른 시작이다. ATM에서 인출하고 근처 폰 가게를 가면 되는 간단한 방법을 여기서는 쓸 수가 없다. 유로가 있으니 환전할 곳을 찾기 위해 근처 은행을 찾아본다. 수중에 남은 돈은 만원 남짓이고 300유로가 있기 때문에 환전할 은행을 향해 나간다. 이럴 때를 위해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하여 놓으면 좋다.

테헤란 터미널의 모습.

 먼저 간 은행에서는 환전을 안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알려준 곳이 Ferdowsi square로 가면 된다고 한다. 지하철로 Emam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그곳으로 갔다.

테헤란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요금은 250원 정도이고 페르도시 역에 도착했다. 

 은행이 아니라 환전소가 있는데, 한 곳은 문을 열지 않았고 그곳에도 앞에 많은 사람들이 환전을 해주겠다고 서있다. 다른 환전소가 있어서 갔는데 그곳은 유로를 환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어가 서툴러 통역을 해준 옆에 앉아있던 학생이 있었는데, 이때구나 싶어 말을 더 붙여서 혹시 유심을 사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엉겁결에 그 여학생은 나를 따와 길을 건너 유심을 사는 곳을 같이 찾기 시작했다. 공사 중인 어느 건물 3층에서 유심을 구입했는데, 구입 과정과 충전을 그 학생이 다 해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알기가 어려웠다. 과정은 10분 안에 끝났고 여권을 가져가야 한다. Irancell을 했는데, 좋다고 들었지만 이란 곳곳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통신사는 잘 되는 경험을 했다.

리모델링 중인 건물에서 유심을 샀다

 그리고 유심을 장착하고 환전을 기다리는데 속는 셈 치고 길거리 아저씨를 따라 가봤다. 1유로당 130,000을 부르길래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나갔다. 끝까지 쫓아와서는 이 환전소는 오늘 공휴일이라 문을 안 열고 우리가 더 환전율이 좋다고 자꾸 보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11시 30분쯤 문을 열었는데, 1유로당 145,000에 깔끔하게 바꿨다.

 그러니 그냥 환전은 테헤란 Ferdowsi 역에서 하면 제일 좋다.

 미리 연락했던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으로 향했다. 호스트가 스냅을 불러줘서 탈 수 있었고, 도착한 그녀의 집은 너무너무 고급진 빌라였다. 어린 아들이 있었고 변호사 부부라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개방적인 무슬림을 표방한다는 그녀의 가정은 라마단에도 그냥 식사를 하는 분위기였다. 엄격할 것 같던 이란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문화를 답답해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밖에서만 서로 조심한다는 이야기와 술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도 했다.

 호스트가 처음이고 4년 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어 한국말을 배웠다는 그녀와 연락을 해서 우연찮게 오게 되었는데, 정말 극진히 나를 대우해줬고 그녀와 그의 남편의 친절이 너무 고마웠다. 포근한 잠자리에서 낮잠을 자고 또 다른 카우치서핑으로 연락하던 대학생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이란에 온 큰 이유 중 하나인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Lee's Kitchen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사실상 한식당은 아니고 그냥 치킨집에 가깝다. 김치볶음밥과 라이스누들 메뉴가 있지만 사실 한국인의 입맛보다는 이란인의 입맛에 맞춘 것 같았다. 그러다 그 친구들이 김치 맛을 궁금해하고 내가 한국인 부부인지 젊은 남녀분이 주방에 계신 걸 보고 김치를 한 접시 따로 받을 수 있냐고 요청을 했는데, 정중히 거절하시는 모습을 보고 깨닫게 있었다. 한국음식이 궁금한 이란인들이 오는 이곳에 나 같은 한국인들이 와서 김치를 따로 달라는 식의 메뉴판에 없는 예외를 바라는 요청들이 이 식당의 본질을 헤치고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한 거절이라고 느낀 나는 자리로 돌아와 맛있게 음식을 비우고 나섰다. 나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 한인 식당 숙소 등 한국인 상대하는 가게의 사장님들을 보면 그런 특이한 요구에 이골이 나서 미리 벽에 금지사항을 적어놓거나 아주 기계적인 응대를 하게 되는 것은 과연 그 사장님이 문제일지 손님이 문제일지 생각하게 한다.

 한 친구는 남부의 부셰르 그리고 한 친구는 동쪽 출신인데 본인은 신앙심이 투철하다고 했다. 그래서 유일하게 가본 해외여행이 이라크의 성지순례 겸 여행이라고 했다. 밥을 다 먹고 그들의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하자고 해서 1시간을 기다린 후 어떤 남녀가 픽업을 왔는데, 정말 100만 km는 탔을 법한 차로 어설픈 난폭운전을 시작한다. 아마 마음속은 강남대로를 슈퍼카로 누비는 영화 베테랑에 조태오 느낌이었나 본데 내가 함께하기에는 조금 짜증이 났다. 거친 운전도 그렇고 영어로 살살 희롱을 치기 시작하는데, 집에 가겠다고 내려달라 하니 데려다준다면서 길을 뱅뱅 돌아 1시간을 더 지체했다. 머리 끝까지 슬슬 화가 차오다 집에 도착하고 뒤도 안 보고 내려 집에 들어온 시간이 새벽 1시. 미리 호스트에게도 양해를 구했지만 보통 2~3시에 잔다는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나를 반겨주고 나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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