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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Jul 17. 2020

S3#72 이스탄불 이사(술 잘 마시는 이슬람 여자들)

19.07.16 (화) 이스탄불에서 사람만나기 3

 다시 봐도 정말 좋은 집에서 머물렀다. 나도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을 품어보며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호스트가 아내 몰래 나를 지내게 해 준 거라 3 밤 잘 자고 나는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스탄불의 물가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조금 비싼 편이었는데, 정말 마침 기적적으로 다른 호스트를 구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머물다 보니, 정말 큰 이 이스탄불의 도시가 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나는 보통의 여행자들이 가는 명동이나 종로 홍대 와는 동떨어진 상계동, 방화동, 고덕동 즈음에 있었던 것이다. 시내로 오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집은 좋아도 차가 없는 여행자로서는 참 힘들었는데, 새로 구한 호스트의 집은 대략 서울로 치자면 북촌 정도 위치하는 곳이라 곳곳의 여행 스폿 하고도 멀지 않았다.

 호스트는 나를 시내 어느 곳까지 드롭해준다고 해서 고맙게도 아침에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새로운 호스트는 치나르 라는  Cinar라는 친구였는데, 사실 영어를 거의 못했다. 같이 사는 이란 룸메이트가 영어가 조금 돼서 그 친구와 연락을 하고 갔는데, 여자 친구들끼리 사는 집에 나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호스팅 하려고 해서 고마웠다. 위치도 너무 좋아서 사실 처음에 조금 무서웠지만 물어물어 도착해보니, 그 친구는 없었고 이란 친구가 있었다. 방은 3개가 있고 거실 방이 있는데, 여자 대학생이 친구랑 한 방에서 자고 두 친구가 각방을 쓰고 있었다. 당연히 거실 방처럼 된 곳에서 자나보다 했지만, 너무 미안하게도 치나르가 자기 방을 비워줘서 거기서 자라고 한다. 

 여자 방이고 나 때문에 일하는 친구가 불편하게 자는 게 싫어서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냥 거기서 자라고 한다. 

 이란 친구는 영어가 곧잘 통했고, 이란에 한 달이나 여행하고 왔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이란 사람들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태국하고 터키 두 나라뿐인 데다 이 곳은 육로로 올 수 있어 많은 이란 인들이 이 곳에 있다. 이 친구도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터키 말도 잘하는 듯했다. 도착하자마자 차려준 간단한 아침을 함께 먹었고 조금 잠을 청했다.

 오후가 되어,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간다. 꽤 오랫동안 연락했었는데, 한국어가 정말 능통하고 재밌는 친구다. 그런데 마침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의 퀴즈쇼에 참여하게 돼서 못 보는가 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만나기로 했다. 이스탄불이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라가 워낙 커서 이곳에서 버스 타고 2시간 거리에 사는 친구가 친히 내가 잇는 곳까지 와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소나무라는 한식당인데, 우거지 해장국이 정말 매콤하니 일품이었다. 이스탄불의 맛집을 찾는다면 단연코 소나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SNS로만 나누던 이야기를 실제로 얼굴 보고 나누니 정말 신기했다. 예상대로 정말 발랄하고 활기찬 여대생이었고, 항상 외국인들은 보기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기 때문에 , 상당했던 나이차에 놀라기도 했다.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터키어까지 하는 4개 국어 능력자였고, 한국어 실력도 어설프지 않고 정말 상당하고 영어 발음도 거의 원어민 수준이다. 정말 똑똑하고 예쁜 대학생이 한국을 좋아하다는 사실이 참 뿌듯하다. 

 간단하게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들었는데, 약간은 외진 도시에서 혼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비가 오던 어느 날, 어머니가 길을 걷다 한국인을 만나서 다짜고짜 우리 딸의 한국어 친구가 되어달라는 뭐 그런 극적인 스토리가 있었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독실한 친구라 히잡은 쓰지 않지만 절대 술도 돼지고기도 입에 안대는 그런 친구였다. 그래도 참 사람이 다 똑같다고 느껴지는 게, 계속 거울 보면서 화장을 고치고 자기 어디 이상한데 없냐고 물어보는 게 영락없는 대학생의 모습 같아 참 재밌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치나르가 돌아와 있었고 그의 친구도 와있었다. 그렇게 터키 친구 두 명과 이란친구 그리고 나까지 넷이 있었는데, 영어가 되는 건 이란친구와 둘이 더듬더듬할 뿐 별게 없었다. 썰렁한 분위기에, 한국식으로 그럼 맥주나 한잔 하자고 권했는데, 농담으로 던진 이야기에 친구들이 그러자고 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오가더니 의견을 모아 와인을 사 왔다. 그리고 과일과 치즈로 상을 차려서 같이 둘러앉아 와인을 마셨다.

 이런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영상에 담고 싶은데, 사실 이슬람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특히나 이란친구들은 히잡을 안 쓴 모습 혹은 술 마시는 게 어딘가에 올라갔을 때 정말 0.00001% 확률로라도 잘못된다면, 심지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꾹 참고 카메라는 꺼내지 않는다.

 다들 나이 때가 비슷해서 20대 후반 30대였는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게, 정말 농도 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물론 나의 궁금함과 무지함과 편견에서 시작된 질문이었는데, 서로 더듬더듬 영어와 번역기를 돌려가며 서로가의 궁금한 것들을 많이도 물어봤다. 물론 19금에 관련된 질문들이 주를 이뤘고,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와인을 비웠다. 

 나가서 마셔보면 확실히 한국인이 빠르게 많이 마시길래 여자들하고 있는 데다 첫날이라 막 더 마시자고 하기가 뭐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서너 병을 더 사 온다. 재밌는 것은 전화를 하니 창문밖에 어떤 아저씨가 술을 가지고 오셨고, 바구니를 내리더니 그 술을 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정말 많이 마셨다. 점점 취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재밌어서 이런 거를 영상에 담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친구들은 자기들은 괜찮다며 그래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과 이란과 터키에 대한 그런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찍어서 보여주라 이야기한다. 정말 진한 으른들의, 특히 이슬람 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끝내 찍지는 않았다. 

 외국인들은 피자로 해장을 한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은 해장에는 뜨시고 매운 국물이 필요한 법인데 외국에서 이렇게 마셔버리면 내일 아침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다들 방으로 들어가고 치나르의 친구가 치나르의 방에서 자고 내가 거실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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