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차향이 사라지지 않는 차통

Syuro 원통 SS 구리

by Tedo
Syuro 구리 ss 원통.jpg Syuro 원통 SS 구리

사무실 한 구석 네모난 상자에 3열로 나열해 있는 네모난 티백들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연둣빛 녹차일 게 분명하다. 내게 차는 티백을 의미했다. 교장실에 불려 가면 진한 검은색 가죽소파의자 4개가 좌우로 도열해있고, 사람이 누워서 잘 수 있을 것 같은 너비에 무릎 높이까지 오는 초록색 부직포가 깔린 검은색 원목 티테이블이 놓여있다. 초록색 부직포 위에는 두꺼운 유리가 깔려있고, 티테이블의 정중앙에는 꽃그림이 가득한 싸구려 플라스틱 쟁반 위에 두껍고 흐릿한 유리잔 몇 개와 하얀 종이컵이 있다. 그 쟁반에는 티백이 원래 담겨있던 네모난 종이상자가 뚜껑이 뜯긴 채로 네모난 티백들이 2열로 도열해있다. 창가 쪽에서는 묵직한 검은색 나무책상 너머로 교장이 지그시 쳐다보면서 ‘차 줄까? 커피 마실래?’하며 물어본다.


학교를 졸업해도 고객사에 들르면 교장실은 거기에 있다. 검은색 삼각형 명패의 이름과 직함만 다를 뿐이다. 그런 곳에 가게 되면 상자째 열어 놓인 채로 권해지는 티백이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물론 고객사가 좀 더 큰 곳이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빔프로젝터나 대형 모니터가 있는 장소겠지만. 차와 커피 중에 나는 그냥 물을 택한다. 티백을 마실 때면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인지 차를 감싸고 있는 종이와 그것을 집고 있는 스테이플러 심을 같이 우려 마시는 것인지 애매한 맛이 난다. 그래서 물을 택한다. 커피는 선택이 두 가지밖에 없다. 인스턴트커피를 담고 있던 스틱형 봉지로 휘졌거나, 탁한 커피물에 담겨있는 티스푼을 다시 내 잔에 넣고 휘졌는 것 중에 골라야 하니 더욱 꺼려진다. 이럴 때는 냉수 먹고 속을 차려야 한다.


틴케이스에 담긴다고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물이 어디에 담기는지에 따라 그 내용물에 대한 내 태도가 다르고 그것을 마시는 내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티백은 포장지를 뜯고 쉽게 끓인 물에 잠시 넣었다가 마시는 것이라 인스턴트커피와 같다. 인스턴트커피보다는 드립백과 비슷하다. 잘 모를 때는 아는 것과 비교하면 좋다. 커피는 원두를 마실 때 갈아서 적정한 온도의 물에 필터로 내려마시면 좋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드립백은 티백처럼 종이필터에 갈린 원두가 담겨있어서 컵에 드립백을 걸어서 내려마신다. 핸드드립에 있는 향이 드립백에서는 모두 빠져나간다. 커피원두는 과일과 같다. 공기에 닿는 부분이 많아지면 빨리 산패되고 맛도 변한다. 드립백이 그렇듯 티백은 차 본연의 향이 덜하다. 찻잎이 되도록 살아있는 형태가 차향을 더 잘 간직하고 있다. 티백보다는 틴케이스에 들어있는 차가 좋다. 그렇다고 매번 틴케이스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찻잎도 원두처럼 봉지로 판다. 그것을 텄다면 산패는 시작된다. 되도록 그 산패의 속도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틴케이스는 뚜껑과 본체의 이격이 있다. 최대한 밀봉된 채로 보관하려고 락앤락 같은 용기에 넣는다면 교장실 위의 티백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차를 손으로 한입한입 따듯이 장인이 한 손 한 손 두드리고 용접한 공예품 속에 보관하는 건 좋은 선택이다.


슈로 원통 SS 구리는 도쿄의 장인들이 구리를 한 점 한 점 두드려 원통을 만들고 그것을 용접한 차통이다. 뚜껑과 본체 그리고 중간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인이 한 점을 만들 때마다 미세하게 두드려 최대한 밀착되도록 만든다. 50g 정도의 차를 담을 수 있는데, 종이컵만 한 크기다. 카이카도처럼 오래된 브랜드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일한 장인들이 같은 공정과 같은 소재로 만든다. 50g을 담을 수 있는 본체에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중간 뚜껑을 닫아주면 벌써부터 차향이 원통 안에 갇힌다. 거기에 다시 겉뚜껑을 닫아주면 완전 밀봉이 된다. 시간이 지나도 차향이 사라지지 않는 차통이다. 용기와 뚜껑이 딱 들어맞아, 용기에 뚜껑을 올려주면 서서히 중력을 받아 내려간다. 이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도의 과정을 잘은 모르지만, 차통에서 차를 꺼내는 것부터 내 다도는 시작된다.


200g 원통 L 백철이 2만 원이 안 되는 가격인데, 크기도 작은데 구리를 사용했다고 두 배로 비싸지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은 크기에 비례해서 가격이 비싸진다. 공예품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작게 만들수록 노력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게다가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장 작은 크기가 제한된다. Syuro에서는 원통을 장인이 한점 한점 수작업으로 구리를 두드리고 납땜하고 있다. 슈로 원통 SS 구리는 원통 L 백철보다 무겁고 단단한 느낌이다. 상대적인 가격에 흔들리지 말자. 언제나 가격 이면에는 납득을 하게 되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그 무언가는 만져보았을 때, 사용할 때 알 수 있다. 가끔 이 통을 주머니 안에 넣고 누군가에게 자랑하러 가고 싶어 진다.



Syuro 원통 SS 구리

가격: 4,200 엔 (한화 약 4만 4천 원)

크기: 약 Ø65xH65mm



Syuro (슈로)

일본 도쿄의 다이토구에서 1999년에 공간 디스플레이, 생활 잡화 등을 기획/디렉션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일상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일본 전통 장인기술을 통해 만들어내는 브랜드다. 온라인은 쇼쿠닌닷컴을 통해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국내에서는 디앤디파트먼트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디앤디파트먼트 매장 가격은 엔화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지만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다.


슈료 홈페이지 http://www.syuro.info/

슈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yuro_tokyo/

쇼쿠닌닷컴 https://www.shokunin.com/kr/syuro/maruk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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