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uro 원통 L 백철
누군가는 내가 발을 걸치고 있는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말하고, 나는 애매한 세대라고 말한다. 한자를 배운 적이 있다. 어느 시기에는 배운 적이 있다. 그래서 한자와 함께한 앞 세대는 당연히 내가 한자를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때면 지식수준이 낮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후배들은 한자를 전혀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이것도 모른다고? 하며 앞 세대가 나를 바라보던 그런 당혹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낸다. 선배들은 한자를 다른 말로 어휘력이라고 했고, 후배들은 줄임말을 어휘력이라고 한다. 목욕탕에서 한 발은 온탕에 한 발은 냉탕에 담그고 있는 자가 감내할 고통이다.
채플이라는 예배시간이 있는 대학교에 다녔다. 대형 극장 같은 강당의 어두운 좌석에 몇백 명이 앉아서 강연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강연자는 반들반들한 얼굴을 하고 옆구리에 두꺼운 성경책을 끼고 강연석으로 걸어 나온다. 시대의 고통에 대해 어떤 성경구절을 읊는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런 내용이었다. 잘 참으라고. 천 번을 때리면 연, 만 번을 때리면 단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연단으로 때려주고 싶어 진다. 국어사전을 검색했고 그런 뜻은 없었다. 한자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그 두 글자는 하늘천 땅지와 같이 아는 한자가 됐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 연단이라는 말은 특정 종교의 단어가 돼버렸다.
대학을 졸업하니 수제, 크래프트맨쉽, 장인정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수제버거와 수제맥주를 먹고 마시면서 나도 그 유행을 즐겼다. 수제라고 하면 어디든 가서 경험했다. 이태원과 한남동에서 수제맥주를 처음 맛보아서인지 그 주변을 돌아다니다 D&Department를 발견했다. 매달 읽고 있는 매거진 B의 교토 편에서 카이카도의 차통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D&Department Seoul에서 똑같이 생긴 제품을 발견했다. 슈로 원통 L 백철. 두세 줄 설명글에는 단련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단과 같은 한자였다. 그 자리에서 단련과 연단을 검색했다. 두 단어 모두 같은 한자를 썼고 의미도 같았다.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함'.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함'. '어떤 일을 반복하여 익숙하게 됨. 또는 그렇게 함'. 접하는 시기와 방식에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다르다. 연단과 단련은 같은 말이었고, 누가 어떤 의미로 쓰든지 좋은 단어였다. 그 순간부터 섣부른 나와 작별했다. 느리고 차분하게 사물과 사람을 대하기로 했다. 장인정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 듯한 단어, 단련과 연단이라는 단어에 애정이 솟았다. 그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듯한 슈로의 백철 원통 L을 샀다.
커피 봉투는 종이로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비닐로 되어 있다. 인스턴트커피를 피해서 드립 커피를 마시는데, 그것을 담는 용기가 비닐봉지라면 조삼모사다. 뜨거운 유기농 음료를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따라 마시는 것처럼 무의미한 행동처럼 느껴진다. 커피 봉투에 넣은 커피를 꺼내 마시면 2주도 안돼서 산패되어 맛이 변한다. 슈로 원통 L 백철은 단련된 장인이 백철을 연단해 원통을 만들고 그것을 용접한 차통이다. 뚜껑과 본체 그리고 중간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인이 한 점을 만들 때마다 미세하게 두드려 최대한 밀착되도록 만든다. 200g 정도의 커피 원두를 담을 수 있는데, 높이가 있는 밥그릇 크기로 국그릇보다는 작다. 카이카도처럼 오래된 브랜드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일한 장인들이 같은 공정과 같은 소재로 만든다.
200g이라는 숫자는 내게 커피 한 봉을 의미한다. 200g을 담을 수 있는 본체에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중간 뚜껑을 닫아주면 벌써부터 커피 향이 갇힌다. 거기에 다시 겉뚜껑을 닫아주면 완전 밀봉이 된다. 이 차통의 강점은 용기와 뚜껑이 딱 들어맞는 완성도다. 용기에 뚜껑을 올려주면 서서히 중력을 받아 내려간다. 이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전까지는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쉼이었고 재충전이었지만, 이제는 커피를 이 통에서 꺼내는 것부터가 쉬는 과정의 시작이다.
SyuRo 원통 L 백철
가격: 1,800 엔 (한화로 2만원 이하)
사이즈: 약 Ø105xH85mm
Syuro (슈로)
일본 도쿄의 다이토구에서 1999년에 공간 디스플레이, 생활 잡화 등을 기획/디렉션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일상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일본 전통 장인기술을 통해 만들어내는 브랜드다. 온라인은 쇼쿠닌닷컴을 통해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국내에서는 디앤디파트먼트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디앤디파트먼트 매장 가격은 엔화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지만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다.
슈료 홈페이지 http://www.syuro.info/
슈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yuro_tokyo/
쇼쿠닌닷컴 https://www.shokunin.com/kr/syuro/maruk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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