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o Dec 31. 2021

시간이 지나면서 진해지고 애정도 진해지는 가방

헤비츠 102 빅포켓 사첼백 L

헤비츠 102 빅포켓 사첼백 L

 시대의 물건이 있다. 가죽샌들은 로마시대, 마차는 18세기, 갓은 조선시대, 타자기는 20세기. 그 시대에만 쓰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있다. 시기의 물건도 있다.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 국민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물건이 떠오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자신의 몸통보다 큰 사첼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핑크색의 에나멜 소재가 캔버스 천과 인조가죽에 코팅된 사첼백을 등에 메고 등교를 했다. 한쪽 은빛 버클만 풀려있던 가방. 물론 자기 주관이 생기는 4학년부터는 다른 가방을 골랐으니, 3학년 이하의 저학년들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나에게 사첼백은 10대로 들어서기 전의 국민학교를 떠오르게 한다. 초등학교 말고. 책보에 책을 싸서 어깨에 묶고 다니던 국민학생의 가방도 있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 국민학생에게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교복이 강제되듯 사첼백이 교복처럼 주어지는 듯했다. 가방 자체가 무겁고, 물건을 빼는 것도 불편해서 그 경험은 이후로 그런 형태의 가방은 거들떠보지 않게 했다.


 이 시기를 지나니 가볍고 튼튼한 소재로 된 지퍼형 백팩을 등에 멨다. 가방은 점점 커져갔고 두꺼운 교과서를 가득 등에 짊어지고 등하교를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은 사물함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크고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야하는 시기를 벗어나니, 이 가방에 대한 기억이 꿈에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패턴은 항상 똑같았다. 꿈속에서 나는 내 몸보다 큰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걸어간다. 가방이 너무도 무거워 한발 한 발을 떼기도 어렵다. 그 꿈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나로 연결됐고, 지겨운 공부를 또 해야 하는 참담함을 온전히 느끼다 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출근을 한다. 불편을 벗어나니 꿈에서까지 그 불편한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왜 이 가방에 끌리게 되었을까. 회사원이 등에 가방을 메는 모습이 흔해지기 전에는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위해 가방을 사기는 싫으니 노트북을 구매하게 되면 같이 딸려오는 노트북 가방을 사용했다. 튼튼한 소재이고 가벼운 데다 검은색이니 어디에나 어울린다. 주머니도 많으니 이것저것 쑤셔 넣는다. 업무용 서류가방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생생하다. 경쟁 PT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 상대편에서는 웬 중년의 남성이 포마드로 정리한 머리에 베스트까지 딸린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맞춤 정장을 입고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는 진한 갈색의 가죽으로 된 서류가방에서 유인물을 꺼냈다. 유인물도 은은한 갈색빛이 돌았다. 아닌 척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람이 들어오고 인사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감탄하며 쳐다봤다. PT 결과는 당연했다. PT도 매력이 넘쳤다. 물론 가방이나 비싼 정장 때문에 그가 그 사업을 따낸 것은 아니다. 그것까지도 완벽하게 멋졌을 뿐이다. 아마 내 모습과 PT는 굉장히 뻔하고 딱딱했을 것이다. 화려한 패션쇼가 끝나고 무대 위로 올라온 디자이너가 후줄근하고 매력 없게 보인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진다. 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 중년의 남자처럼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나는 내가 분석한 보고서와 발표 그리고 기획물들을 좋아했다. 많은 시간과 생각을 투자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한번 사용했다고 버리고 싶지 않았다. 분석이 막힐 때마다 이전의 내 분석들을 다시 보면 어떻게 가야 할지 보였다. 내가 사용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자주 사용하면 할수록 더 전문가로 성장했다. 내가 귀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들은 소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가치 있고 소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을 가지고 싶기보다는 잘 만든 물건이 나와 함께 있어서 더 빛이 나는 그런 물건들을 갖고 싶었다. 그러다 헤비츠라는 가죽공방 회사를 발견했다. 좋은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 속에서 유독 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베지터블 통가죽으로 겉과 안이 모두 통가죽으로 되어 있다. 안감이 별도로 없으니 벽지로 가리지 않은 깔끔한 벽을 보는 듯하다. 포켓은 총 4개다. 뒷면에 종이나 얇은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얇은 포켓이 있다. 내부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는데, 큰 공간에는 15인치 노트북을 4개까지 넣을 수 있고, 작은 주머니에는 노트, 화장품, 핸드폰 등이 넉넉하게 들어간다. 전면에 있는 얇은 포켓에는 명함이나 카드를 넣을 수 있다. 손잡이와 뒷면은 자주 손이나 허벅지가 닿아서 빨리 반들반들해질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골고루 반들반들해지도록 헤비츠에서는 여러 관리용품을 판매하고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 가방은 베지터블 통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무겁다. 지퍼로 쉽게 여는 가방들과 달리 버클을 끌러서 열어야 한다. 관리를 해줘야 한다. 통가죽이니 습한 곳에 오래 방치하면 곰팡이가 생긴다. 명품이 아닌데도 가격이 비싸다.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왜 이 가방을 선택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진해지고 애정도 진해지기 때문이다. 저렴하게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공장에서 찍어낸다. 저렴한 소재를 사용한다. 처음 사용할 때는 편하다. 문제는 금방 망가져 버리게 된다. 결국 저렴한 물건을 사서 막 쓰다가 버리고 다시 저렴한 물건을 사게 된다. 이 가방은 수제다. 주문을 하면 공방에서 만든다. 받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주문을 하고 나면 누군가 나를 위해 좋은 재료를 선택해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참고로 헤비츠 제품을 좋아해 최근 가죽공예를 배웠다. 과정에는 없었지만 강사를 닦달해 사첼백을 만들었다. 이 사첼백보다 작은 1/3 크기로 만드는데, 2주일 동안 매일 6시간씩 투자해서 만들었고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다. 온몸이 쑤시고 물건을 쥐는 것도 힘들다. 엄청난 수고가 들어가는 가방이다. 전문 가죽공예가가 주문과 함께 만들어주는 가방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가죽과 달리 이 가방은 관리를 해줘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물건 같다.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내고 멋있는 정도가 달라진다.

 혹시 마음이 동했다면,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러서 다른 제품들도 보고 어떤 좋은 가죽을 사용하고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지도 보는 걸 추천한다. 거기에 더해 그 물건들을 오래 사용한 사람들의 사진과 리뷰를 보면 그들의 진해진 애정을 나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는 곰탕, 시간이 지날수록 우려 나오는 진국,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헤비츠 102 빅포켓 사첼백 L

가격: ₩450,000

외측크기: 가로 38 x 높이 25 x 폭 9.5(cm)

전면 빅 포켓크기: 가로 31 x 높이 16.5 x 폭 3(cm)




헤비츠 (Hevitz)

헤비츠는 베지터블 가죽으로 가방, 소품을 만드는 회사다.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10년이상 쓰고 10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아서 10년 뒤에 누군가에게 물려줄 때 서로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제품을 지향한다.


회사소개 https://www.hevitz.com

헤비츠 102 빅포켓 사첼백 L https://www.hevitz.com/product/102-%EB%B9%85%ED%8F%AC%EC%BC%93-%EC%82%AC%EC%B2%BC%EB%B0%B1-l102-big-pocket-satchel-l/1885/category/358/display/1/#none

인스타그램 계정 https://www.instagram.com/hevitz_workers/


#헤비츠 #Hevitz #베지터블가죽가방 #사첼백 #satchelbag #drawing 

작가의 이전글 한 손에 쥐고 순간을 그리고 뜯는 오렌지색 노트패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