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작은 미술관, 오래 마시고픈 백자 한 잔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

by Tedo
무인양품 찻잔.jpg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 잔을 반복해서 권하는 분위기가 싫고, 알코올 가득한 맛이 싫다. 술자리에서 소주는 한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 너 왜 방석을 까냐, 벌써부터 수작질이냐, 원샷, 머리에 털어야 하는 그 이상한 행동들, 술이 들어가는 이상한 노래들까지 이런 것들을 참아낸다고 해도 목구멍에 털어 넣어야 하는 술이니 약처럼 느껴지는 기분이다. 약도 쓰니 비슷한 것일까? 인생이 쓰니 술이 쓰다는 둥, 아직 달지 않은 것을 보니 인생의 쓴맛을 맛보지 않았다는 둥 헛소리들을 반복해댄다. 양약고어구를 들먹이며 소주가 쓰니 몸에 좋다는 말은 그래도 한 번은 웃어줄 만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권하면 싫어진다. 싫어하는 것을 계속 권하니 더 싫어진다. 어릴 때 한 입만 더 먹으라는 어머니의 강요가 싫어 앙다문 입을 하고 거부를 표시하는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소주를 싫어하니 손잡이가 없는 작은 크기의 잔을 보면 거부감부터 든다. 알코올 향 가득한 소주를 떠오르게 하고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술잔에 대한 내 선입견이었다.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좋아해 항상 냉장고에는 에일맥주를 몇 개씩 넣어 두곤 했다. 캔을 입에 대고 마시는 게 좋지 않다는 말에 전용잔을 사서 마셨는데, 설거지를 할 때면 항상 유리잔이 깨졌다. 유리잔 핑계를 대기 위해 깨졌다고 말했지만, 내 부주의로 깨 먹었다. 마지막 맥주 전용잔이 깨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 맥주 전용잔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소주와 맥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소주는 맛이 없어서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다고 말하다가, 맥주로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는 모순적인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는 아전인수를 해줘야 한다. 소주는 써서 목구멍으로 털어 넣지만, 맥주는 빨리 몸을 시원하게 해 주기 위해 목으로 넘기는 거라고 정당화를 했다. 상대방은 알아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냥 ‘저 똥고집 또 시작이네’하고 모른척해주는 것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날 설거지를 하면서 그 마지막 맥주잔을 깨 먹었다. 다시는 유리로 된 맥주잔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만의 튼튼한 잔을 찾기로 했다.


박물관을 좋아한다. 특히 민속박물관이나 공예박물관에 가면 누군가가 애정을 갖고 사용한 물건들이 보인다. 그 당시에만 좋은 물건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물건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보인다. 안정적인 둥근 형태로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담백한 백자나 은은한 쪽빛의 청자는 색감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박물관 로비에 있는 숍에서는 장인들이 만든 청자와 백자를 팔고 있지만, 살 마음은 들지 않는다. 집이 크지도 않아 둘 곳도 없지만, 쓰지도 않을 물건을 두는 것은 사치 같아 부담이다. 예술품 말고도 컵이나 그릇도 팔지만, 가격을 보고 내려놓는다. 그 가격이라면 편하게 쓰지 못할 것 같다. 편안해야 할 집에서 사용하기에 편하지 않으면 그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아름다운 색과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 일상에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물건이 좋다.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은 이름에 백자라고 되어 있지만, 청자에 가까운 색이다. 규슈 구마모토산의 아마쿠사 도석은 강도가 뛰어나고, 조금 푸른빛이 도는 색이 특징이다. 무인양품에서는 이 원료를 이용해서 백자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그 시리즈에 속해 있는 찻잔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겉과 속이 모두 균일하게 연한 청자빛을 내는 것과 그릇의 안에는 하얀 줄이 일정하게 파동을 그리고 있는 단아함에 있다. 많은 제품 속에서 이 찻잔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형태와 알맞은 크기 그리고 색이 주는 담백함 때문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한 손에 이 찻잔을 쥐고, 냉장고 속 시원한 에일맥주를 따랐다. 시원함이 천천히 손에 느껴졌다. 찻잔에 입술을 갖다 대니 고급 전통찻집에 온 듯했다. 차가운 맥주가 입술과 혀를 천천히 적시니 맥주의 맛을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맥주를 찔끔찔끔 마셨다. 이 맥주가 원래 이런 맛이 났나? 500ml 맥주캔을 이 잔에 따라 마시면 3번만 따라 마시면 된다. 그렇다고 이 잔이 그렇게 크지도 않다. 향수에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가 있듯이, 맥주에도 그런 게 있는 듯하다. 특히 에일은 따르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으로 따르면 분명 가장 맛나지만, 다양한 맛은 느끼지 못한다. 이 잔으로 맥주가 더 좋아졌다.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을 좋아한다. 그들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서 읽는다. 늦은 밤 이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서, 책꽂이에 꽂혀있던 <슈퍼노멀>이 보여 다시 꺼내 읽었다. 중간 즈음에 이 잔이 눈에 띄었다. 이미 난 이 잔을 예전에 보았던 것인데 잊고 있었던 것이다. <슈퍼노멀>에는 두 디자이너의 사물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다. 평범함 속에 존재하는 비범한 아름다움. 무의식 중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내 입맛이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제 나는 이 잔에 무엇이든 따라 마신다. 차는 당연히 언제나 이 잔에 마신다. 커피를 좋아하니 커피도 이 잔에 마셔본다. 커피를 서버에 내린 후에 서버에 뚜껑을 닫고, 이 잔에 내려 마시면 차를 마시는 것 같다. 이 잔으로 마시는 모든 것은 입술부터 시작해서 혀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게 된다. 찻잔 안에 담긴 물은 청자빛을 그대로 보여주고, 녹차는 노란빛이 아닌 연한 녹색빛을 띤다. 커피가 담겨있을 때는 진한 갈색 뒤로 비치는 하얀 띠가 적당히 선에 맞춰서 마시라는 듯 재미를 더한다. 책상 위에 다 마신 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청자를 하나 두고 보는 작은 사치를 누리는 듯하다. 책상 위 작은 미술관, 오래 마시고픈 백자 한잔이다.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

가격: ₩3,900

용량: 180ml



[무인양품 Muji]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무인) 좋은 품질(양품)’을 의미하는 무인양품은 1980년에 설립된 일본회사로 생활에 필요한 잡화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카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철저한 생산과정의 간소화, 소재의 선택, 포장의 간략화라는 3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심플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한다.


무인양품 백자 라운드 티컵 http://www.mujikorea.net/display/showDisplay.lecs?goodsNo=MJ00059181&storeNo=1&siteNo=13013&goodsCompositionCode=50

매거진B No.53 Muji(잡지)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373799

Muji(서적)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3551188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923733

Muji Homepage(사이트) http://www.mujikorea.net/

무지글로벌 유튜브(영상) https://www.youtube.com/user/MUJIglobal

Mujik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ujikr/

Found_Muji(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found_muji/


#무인양품 #muji #teacup #찻잔 #컵 #drawing #jaspermorrison #supernormal #FukasawaNaoto #슈퍼노멀 #후카사와나오토 #재스퍼모리슨

keyword
이전 14화공간을 음향으로 채우면, 생각은 추억으로 한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