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의 가드닝 Oct 22. 2021

아네모네의 싹이 자라지 않는다면,

추식구근, 온도의 함정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같은 그룹으로 묶인 식물들은 키우는 방법이 같을거라는 것이다.

가령 모든 다육이는 햇빛을 좋아할 것이라던가, 허브는 다 건조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 같은.


추식구근도 이런 오해를 받는 식물이다.

아무래도 일반 소비자가 추식구근을 구입해서 키운 역사가 깊지 않고, 아직도 주류 가드닝 영역 밖에 있는 비주류의 영역에 있다보니 정보의 부족으로 "추식구근은 이렇게 키워야 해" 식의 주장을 쉽게 수용하는 까닭이 있을수도 있다.


추식구근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모두 춥게 키워도 되는 줄 아는 것이다.

가을에 심어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이니, 상식적으로 가을부터 여정이 시작되고 가을에도 생장을 계속한다고 생각하면 추위를 견디는 내한성도 당연히 좋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식구근도 경우에 따라선 내한성이 낮아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지 못하는 식물들이 있다.

바로 프리지아, 아네모네, 라넌큘러스가 그러하다.


이들 식물의 최저 생육온도는 영상 5도이다.

여기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는데, 최저 생육 온도가 5도이니 5도에서 쭉 키워도 되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 생육온도는 이 온도에는 죽지 않는 다는 뜻이지, 이 온도로 쭉 키워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라넌큘러스를 영상 5도에서만 키우면 잎이 나지 않고 멈춰 있어 꽃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식물이 잘 자라는 온도는 '최적 생육 온도'라 부르는데, 라넌큘러스의 경우 10~15도가 최적 생육온도이다.

이도 지온, 즉 흙의 온도를 말하기 때문에 공기중의 온도는 이보다 다소 높다.



이런 오해 때문인지 프리지아, 라넌큘러스, 아네모네를 키우다 냉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추식구근처럼 영하에도 끄덕 없을 줄 알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가 밤 사이 떨어진 온도에 싹이 냉해를 입는 것이다.

이 경우엔 사전에 이들 식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니, 이런 결과가 나와도 누굴 원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를 해서 키운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 식물의 냉해 피해를 겪는 사람도 있다.

억울한 상황인데, 미리 찾아본 정보가 틀린 정보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라넌큘러스와 아네모네, 프리지아는 심자마자 싹이 나는 식물이다.

개화에 광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서, 추식구근 중에서는 광량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식물을 실내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최대한 창가쪽에서 이 식물을 키운다.




문제는 창틀과 문틀에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다.

오래되어 웃풍이 부는 창문은 물론이고, 단열이 잘 되는 최신 창문도 구조상 부득이하게 작은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곳이 있다.

아주 적은양의 바람이라 집의 온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식물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다.




일반적인 겨울 온도는 괜찮지만,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지는 한파가 있을 때, 창가 가까이, 바람 가까이 이들 식물을 두면 그 바람에 싹이 냉해를 입는다.

그나마 잎이 오래되면 그 사이 잎이 두꺼워져 추운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겨내지만, 이제 갓 나온 어린 싹은 한파의 희생양이 되어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이런 냉해 피해는 바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추운 동안엔 냉해로 얼어버린 잎의 조직 파괴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겉에서 보기엔 아주 멀쩡해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냉해 피해는 추위가 가시고 날이 풀려서 잎의 얼음이 녹고, 파괴된 세포벽이 고사(말라버리) 되어 비로소 발견된다.


그러니 한파가 계속 되는 날씨에선 조기에 냉해 사실을 발견하기 더더욱 어려워 피해를 가중시킨다.


그래서 바깥 온도가 영상 5도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프리지아, 아네모네, 라넌큘러스를 키울 때 낮에는 햇빛 가까운 곳에 두되, 밤에는 창이나 문에서 멀찌기 떨어진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싹들이 냉해 피해를 입게 되며 광합성이 부실하게 되고, 식물이 전체적으로 성장속도가 둔화되어 꽃을 충분히, 풍성히 피우지 못 할 수도 있다.


추식구근은 디테일을 몰라도 키우기 무난한 식물이지만 때로는 아주 작은 디테일이 생과 사를 좌우하기도 하니, 추식구근 키우기 쉽다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구근만 뿌리가 안 났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