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여기가 한국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그 왕실 세트장인가요?”
“실제 조선시대의 궁궐도 이 세트와 비슷하게 생겼나요?”
넷플릭스 촬영 현장 공개 씨네21 기사 가운데 일부. 외국 기자들은 이런 걸 궁금해 했다고 한다. 씨네21기사를 보면 이후경 미술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영한다는 점이 굉장히 신경 쓰인 작품이다. 서양인들의 인식으로는 대개 아시아 하면 대표적으로 소비되는 모습이 중국과 일본의 풍경인데,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덕이라 이 기사를 보고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실제로 킹덤은 눈이 즐거웠다. 보통 세트장 중심으로 1~2군데 장소를 찍는 다른 사극과 다르게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등 실제 궁궐 로케 장면이 많았고 문경, 부안 세트장과 수원화성 행궁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만들었다. (뒤에서도 다루지만 용도와 다르게 나온 건물들은 좀 아쉽다.)
어디가 어디인지 정리하는 잉여짓을 해봤다.
1. 왕의 거처 : 실제 궁궐(경희궁 숭정전)
드라마에서는 강녕전(경북궁의 왕의 거처)으로 등장하는 건물로 영화의 주된 무대 중 하나. 죽은 왕이 좀비로 변해 감금(?)된 건물이다. 이곳은 5호선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에 있는 대중에게 가장 덜 알려진 경희궁의 정전(메인 건물)인 숭정전으로 '세트'가 아닌 실제 궁궐이다.
실제 이 건물의 쓰임새는 드라마와 달랐다. 이 곳은 왕과 신하가 국가의식을 거행하는 행사 공간으로 왕의 거처가 아니다. 흔히 사극에서 왕과 신하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나오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드라마와 다르게 이 건물은 홀의 행태로 내부에 방이 없다. (드라마처럼 실내 복도+방 구조로 된 궁궐 건물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인상적인 대목은 신하들이 왕을 보겠다고 찾아가는 장면. 들어가는 입구까지는 문경 세트장인데 다음 씬은 경희궁 숭정전. 그림을 살리려고 문경에서 한 컷, 서울에서 한 컷씩 찍은 정성이 드러나는 대목. 사전제작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특징이기도.
2. 중전의 거처 : 실제 궁궐(창경궁 통명전)
1화 때 세자가 석고대죄를 하고 중전의 소름돋는(?) 연기가 시작된 장소. 여기도 실제 궁궐인데 이번에는 경희궁이 아닌 창경궁의 통명전이다. 사실 이 곳이 실제 왕이 생활했던 장소다.
잘 보면 다른 궁궐 건물과는 다르게 건물 위에 하얀색 시멘트처럼 생긴 '용마루'가 없다. 용마루가 없는 이유에 대해 많은 설이 있는데, 왕이 곧 용이기 때문에 다른 용이 필요가 없는 데다 왕의 기가 눌릴까 싶어 왕이 거처하는 공간에는 용마루를 두지 않았다는 설이 널리 쓰인다.
3. 의금부 추국장: 문경 세트장(경복궁 강녕전을 재현한 문경 세트장)
유림들이 고문을 당하던 의금부 추국장 모습. 세트이긴 하지만 실제 쓰임새와 다르게 나온 공간 중 하나다. 지붕을 보면 방금 말한 '용마루'가 없다. 이 건물은 드라마 '대왕세종' 촬영 때 만든 문경 경복궁 세트장의 일부로 강녕전(경복궁의 왕의 침전)을 재현했다. 건물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용마루가 없는 건물을 쓴 점은 아쉽다. 현대로 치면 청와대 관저를 종로경찰서로 쓰는 셈.
4. 시체 많은 연못 : 실제 궁궐(창덕궁 관람정)
좀비에게 물어뜯긴 시체를 보관(?)하는 곳은 창덕궁 후원(뒷 정원)에 있는 관람정이라는 정자. 경희궁, 창경궁에 이어 창덕궁까지 나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각도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국내 유일의 부채꼴 모양 정자라고 한다.
5. 수렴청정 선포 : 실제 궁궐(창덕궁 인정전)
중전이 수렴청정을 선포하는 장면은 창덕궁의 정전(메인 건물)인 인정전에서 촬영했다. 창덕궁이 실제 조선의 정궁(센터) 역할을 오래 해서 창덕궁의 메인 건물인 인정전은 조선 사극의 주 무대이기도도 하다.
이 장면을 보고 심쿵했다. 보통 궁궐 정전 씬은 부안에 있는 창덕궁 세트장에서 주로 촬영하기 때문. 실제 인정전을 사극에서 촬영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다만 내부촬영은 부안에 있는 세트장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내부촬영이 허가됐을 것 같지도 않지만 실제 인정전은 근대까지 사용하다보니 내부에 전기 설비가 설치돼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영화 광해, 사도 등은 인정전이 아닌 인정전 세트장을 썼다. 잘 보면 세트장은 단청의 색이 빠져서 녹색 풍이 강하다.
6. 광화문 : 문경 경복궁 세트장
드라마에는 경복궁 전경 CG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다니는 장면도 종종 등장하는데 이 곳도 문경에 있는 세트장이다. 실제 광화문의 70~80% 규모라고 한다. 확실히 작고 성벽도 많이 낮다.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불타고 고종 때 복원됐기에 조선후기 세도정치시대가 배경인 점을 감안하면 경복궁이 없어야 정상이긴 하다.
7. 상주 읍성 : 문경 고려시대 세트장
피난민이 몰려오는 상주 읍성으로 등장하는 곳 역시 문경의 세트장이다. 이 세트장은 아까 언급한 조선시대 세트장과 다르게 KBS에서 고려시대 사극을 연달아 찍을 때 만들었다.
8. 문경새재, 수원화성 행궁 등
극 후반부에서 문경새재로 나오는 곳은 실제 경상도를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핵심 길목인 문경새재 관문들이다. 태극 문양의 문이 겹겹이 닫히는 장면은 수원화성의 행궁.
기타)
한때 사극 덕후들 사이에서 고증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됐던 활 파지법. 킹덤에 주로 나오는 장면은 양궁식 쏘는 법으로 저렇게 하면 국궁은 화살이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