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상담실] 책을 읽긴 하는데, 왜 내용을 모를까요

속도보다는 깊이를 길러주세요.

by 이서영

책을 읽긴 하는데, 왜 내용을 모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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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지만 이해를 못 하는 아이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 A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권씩 술술 읽어낸다고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그런데 막상 책에 대해 질문을 하면, A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줄거리를 어설프게 이야기하거나, “몰라요” 하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나는 조금 더 정확히 보기 위해 실험을 해보았다. A가 책을 읽는 시간을 세 분 단위로 끊고, 중간마다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책은 글밥이 제법 있는 동화책으로, 결코 짧거나 쉬운 책은 아니었다. A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나 “방금 읽은 장면에서 주인공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라고 묻자 멈칫했고, “이 장면 뒤에 무슨 일이 생겼어?”라고 묻자 고개를 갸웃했다. 눈은 책장을 열심히 쫓아갔지만, 머릿속에는 내용이 채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단순히 책을 빨리 읽는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독해력과 이해력의 불균형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다. 국립국어원의 연구에 따르면 초등 4학년의 평균 읽기 속도는 분당 120~150 단어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A는 분당 200 단어가 넘는 속도로 책장을 넘겼다. 미국 교육평가협회(NAEP)의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있다. 읽기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추론이나 비판적 읽기 과제에서 평균 이하의 성취를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눈으로 글자를 빠르게 훑었을 뿐, 이해의 깊이가 따라오지 못했던 셈이다.

빠르게 읽는 아이들 중에는 줄거리만 대충 따라가고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의 맥락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단기 기억에 머문 정보가 금세 사라져,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게다가 “많이 읽는 것이 곧 잘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일수록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읽었는지를 성취로 여기면서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다.


속도보다 깊이를 길러주기


나는 A와 같은 아이들을 만날 때, 먼저 속도를 늦추는 훈련부터 시작한다. 책을 세 분 읽고 멈춘 뒤 “방금 읽은 부분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뭐였어?” 하고 말로 정리하게 하는 것이다. 읽기 속도를 잠시 늦추고 이해에 집중하게 하려는 훈련이다. 또 읽고 난 뒤에는 짧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기분은 어땠을까?”, “이 사건이 다음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같은 질문은 아이의 이해력을 점검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눈으로만 훑는 습관을 줄이기 위해 직접 소리 내어 읽게 하기도 한다. 아이는 스스로 목소리를 들으며 집중력이 높아지고, 교사나 부모는 어디서 멈칫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곧장 사전을 찾기보다 먼저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추측해보게 하는 것이다. 이후 문맥을 통해 답을 확인하면 어휘력은 물론 문맥 파악 능력까지 함께 길러진다. 책 내용을 아이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주인공이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네가 어릴 때 잃어버린 인형 생각나니?” 하고 물어보면 책 속 이야기가 아이 마음속에 오래 머무른다. 긴 독후감 대신 “오늘 책에서 배운 한 가지”를 한 줄로 적게 하는 습관도 좋다. 핵심만 정리하는 힘이 쌓여 책 읽기가 아웃풋으로 이어진다.

책을 빠르게 읽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대견하면서도 불안하다. “이렇게 빨리 읽는데 왜 남는 게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책을 많이 읽는 아이보다 책을 깊이 읽는 아이가 결국 더 큰 문해력과 공부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독서 속도보다 중요한 건 책 속에서 멈추고 곱씹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만들어주는 부모가 되어줄 때, 아이는 평생의 문해력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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