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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30. 2024

24. 내담자에게 기회를 주는 상담자

청소년상담 성찰일지3

  “속옷 벗고 성기 그림 그려라”심리상담사의 기괴한 요구, 그루밍 성폭력! 한국일보, 2019년 5월 22일 기사의 제목이다. 충격적이다. 강원남선생님의 <상담자의 윤리> 발표 첫대목이다.      

‘배려의 아이콘인 상담자가 폭력을, 다른 것도 아니고 성폭력을 했다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심리상담사라고? 비밀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내담자의 심리를 악용하다니.’아침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괜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곧이어 양준석 교수님께서 영화한편을 보여 주셨다. 잠깐이지만 화면 가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였다. 스토리가 엄청나게 스피드하게 바뀐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데에 한표!      

느닷없이 형사가 자기 자식을 남의 자식과 바꿔치기한다. 정확히 말해 죽은 자기 자식과 남의 살아있는 자식을 바꿔치기한다.      

‘내 자식이 어차피 살아날 가망이 없다면, 마약중독자 부모 밑에서 학대받는 아기를 내가 구출해 내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면 모두 다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래, 오히려 이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야!’      

과연 그럴까? 모두가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진실은 숨겨져도 될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 있을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그래야만 하는 당위적 결말,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영화를 보신 소감을 줌 음소거 해제하시고 말씀들 해주세요.”     

“남의 행복을 빼앗아 자기 행복을 누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차 떼고 포 떼고 형사가 아이를 바꿈으로 최고 약자인 학대받던 아기도, 형사의 아내도 모두 행복해지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영화도 재미있구요.”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요? ”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Kitchener(1984)는 <윤리적 상담원칙>을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담자가 추구하는 바를 알려주되 내담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자율성, 내담자에게 도움을 베풀어야하는 선의, 내담자에게 심리, 신체, 정서적으로 해를 끼치지 말라는 무해성, 내담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공정성, 거짓말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라는 충실성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상담자여부를 떠나서 생각해봐도 상담자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라고 여겨진다.     

Rest(1983)는 <도덕적 행동>에 주목한다. 도덕적 감수성, 도덕적 판단력(인지), 도덕적 동기화(정서), 도덕적 품성(행동)이 있어야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만약 어느 한 요소라도 결핍이 되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수성, 즉 ‘알아차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태파악 ’이 관건이다. 그야말로 촉을 가지고 관심있게 내담자를 살펴야 가능하다. 언어든 비언어든 내담자가 온 몸으로 보내는 총체적 사인에 주목해야만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 죽은 자를 위해 장례 때 불러주는 노래로 ‘지로경(指路經)’이라는 게 있다.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험난한 저승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역할이다. 이렇게 인간은 죽어서도 가야할 길을 물어보고 배워야하는 한없이 나약하고 무지한 존재다. 어떤 의미에서는 삶과 죽음은 온통 ‘선택’의 틈바구니 속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내담자는 ‘삶의 길’을 상담자에게 물어본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지금 내 앞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내담자가 앉아있음을 용케 알아차렸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먼저 도덕적 판단을 동기화하고 도덕적 품성을 가지고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순간 앞이 캄캄해진다. 바로 “지금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이렇게 물어볼 용기조차 나는 없다.      

다만 내담자가 다른 ‘두 번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내담자가 섣불리 치료하거나 해결하려고 굴지 말고 기다려 줄 것이다. 내담자의 삶에 놓인 어려움 앞에 물러나지 않고, 함께 머물러서 들어주고 그의 슬픔을 지지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극단적 선택이 아닌 ‘두 번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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