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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30. 2024

25. 120년 전에 태어난 천재 프로이드 덕후

청소년상담 성찰일지4

프로이드는 내 기억 속에 항상 ‘리비도’에만 관심있는 약간 의뭉스런, 그러나 엄청 유 명한 정신과 의사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프로이드가 이런 엉뚱한 생각으로 한세기 넘게  전지구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프로이드의 엄마는 20대, 아버지는 40대, 이복형들과 엄마의 나이 차이가 거기서 거기. 남성의 우월성을 집안 곳곳에서 부부성행위로 과시하듯 보여줬다는 아버지. ‘아! 그랬구나. 그저 평범하게 소꿉장난이나 하고 놀 시기에, 아들로서 엄마를 소망하며  자랐구나. 가족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구나.’  그동안의 해묵은 프로이드에 대한 오해가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프로이드는 아동기를‘나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등등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 하며 불안과 두려움으로 불편한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나는‘리비도’를 성적에너지로만 여겨왔다. 그런데 ‘삶에 대한 의지’라고 깨우쳐주셨 다. 리비도와 타나토스. 삶과 죽음. 동전의 양면. 이제야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자살생각이 많은 사람은 리비도 즉, 삶의 에너지도 부족합니다.” “삶의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연히 죽음의 충동도 강합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올랐다. 과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했던가?  자신을 상대로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고 그 역동을 파헤치며 프로이드는 과연 만족했을 까? 아무튼 자신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 그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을것만 같 다. 프로이드는 ‘성격’이 불안한 존재인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서 본능적 ‘원초아의 욕 구’를 ‘자아’가 현실에서 지탱, 조정해줌으로 강화시켜가는 구조를 가졌다고 보았다. 그 속에서 도덕적 원리의 지배를 받는 ‘초자아’는 인생의 다림줄 역할을 맡았다고. 성 격의 구조에 관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의 세계에 비해 상대적으 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더구나 초자아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단 다. 인간의 성격이란 흥미롭다. 수업 말미에 느닷없이 나는 의문이 쏟아졌다. “교수님! 성격도 바뀌나요? ISTJ가 ESFP가 될 수도 있나요?” “프로이드에 따르면 성격은 안바뀝니다. 선생님이 성격을 계발하신거라고 볼 수도 있지 만 결국 원래의 성격으로 돌아오는거라고 봅니다. 프로이드는. 심리검사 한가지로 성격 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선생님이 성격결정론자인 프로이드를 받아들일건지 로저 스의 선택에 의한 환경결정론을 받아들이실건지가 문제죠.” 그렇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성격은 결코 바뀔 수 없단다. 물론 교육을 받고 사회화가 되 면서 나름 계발시켜갈 수는 있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유전적 기질’ 역시 성격은 결국  바뀔 수 없다는 프로이드 이론을 확신하게 만든다. 또 하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하면 어쩐지 ‘꿈’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사람은 REM 수면상태에서 하룻밤 사이 대략 2~3시간을 꿈을 꾼단다. 꿈이라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 울만큼 할 말이 많다. 왜냐하면 꿈 속에서 또 꿈을 꾼 적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신혼초 에는 내 잠꼬대 때문에 남편에게 뺨을 맞은적도 많았다. “꿈이다. 꿈이다. 깨라. 깨라.” “아! 알았다고. 알았다고. 나도 안다고.” 새신랑에게 뺨을 맞는 억울함 한편 ‘또 꿈 속에서 대란이 있었구나.’하며 넘길 수 밖 에 없는 노릇이었다. 내 무의식세계 속의 꿈 때문에 뺨을 맞다니. 나는 그당시 밤새기를 밥먹듯이 하는 프리랜스 출판편집자였다. 밤을 새며 아웃소싱 받은 출판사의 데드라인을 맞추다보면, 책상에서 팔을 베고 잠깐 눈 을 붙이기가 일쑤였다.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이 훅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깬적 도 허다했다. 물론 약도 없었다. 다행히 꿈 속에서 일어나 돌아다니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그렇게 지내기로 마음을 바꿔 먹으니 오히려 편했다. 또 하나 10년이 지나도 확실히 기억하는 꿈 하나가 있다.  2009년 신종플루로 황망하게 돌아가신 시어머니꿈이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새하얀 양장 옷을 차려 입고, 예쁘게 파마를 하시고, 둘째 며느리인 나를 따뜻하게 껴안아 주셨다. 나 는 새벽녘에 깨어 침대머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어찌 잊을수가 있겠는가!  임종때까지 필담으로밖에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서 늘 마음 한켠의 아쉬움을 떨칠수가  없었는데, 하룻밤 꿈 한번으로 작은 며느리의 마음을 씻은 듯이 개운하게 위로해주신 시 어머니의 꿈. 난 복받은 사람이다. 더구나 총애받던 둘째 아들인 남편의 꿈에도 안나타 나셨는데 말이다. 프로이드를 꺼려하고 거북해했던 내가 아닌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통찰과 정서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근원적 심리이론에 관심있는 실존추구적 내담자로 변하는 나를 발견한 다. 마침내 나도 저 유명한 ‘프로이드 홀릭의 반열’에 들어 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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