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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틔우머 Apr 19. 2021

친절한 금자씨를 잊지 못하는 이유

'넌 이미 빨개서 화장 안 해도 되겠다'

친절한 금자씨를 아시나요?

"너나 잘하세요"를 외치며, 빨간색 아이섀도로 화장한 이영애의 모습이 그려지는 영화, 바로 그 영화다.

친절하기 싫어 눈을 시뻘겋게 칠하고 다닌 금자씨,
내 눈 위가 금자씨와 같이 빨갛다는 이유로 어릴 적 나의 별명은 "친절한 안나씨"였다. 굳이 나와 금자씨와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빨간 눈 위 그리고 의도된 친절함일 것이다.

[RED EYES]
내 눈 위가 빨간 이유는 금자씨처럼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직업상 이유로 이사를 많이 다녔던 나는 중학생이 되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새집 증후군이란 게 이런 것이었을까? 그 아파트에 살게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나의 피부는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 접히는 부분이 견딜 수 없이 가려웠고, 잠자는 중에도 계속 긁어 딱지가 생기고 피가 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토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토피人이 돼버렸다.

아토피 증상은 신기하게 부위를 옮겨 다녔다. 팔과 다리의 접힌 부위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목으로, 목에서 또 눈으로... 아토피로 고생받던 부위가 좀 괜찮아져서 '이제 좀 나았나?' 싶을 때마다 야속하게도 다른 부위에서 아토피가 생겼다. 특히 눈 위는 항상 아토피로 빨갛게 자리 잡았고, 그 후로 나는 의도치 않게 '친절한 안나씨'가 되었다.


[친절함]
또 다른 공통점은 "의도된 친절함"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영화 첫 장면을 보면, 교회의 성가대원들이 금자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아있는 천사라지요?", "안에서는 다들 친절한 금자씨라고 부른다잖아요." 그렇다. 금자는 교도소 안에서 천사 같았다. 자신의 신장을 떼어 다른 죄수에게 주기도 했고, 고통을 받는 다른 죄수를 도와주기 위해 "마녀"라고 불리는 사람을 대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친절한 금자씨"로 일컬었다. 그러나 복역 후 그녀는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지 않는 그녀를 보고 "왜 이리 달라졌어"라고 묻는다. 그녀는 달라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본모습이었을까?

내가 극 중 교도소의 금자씨처럼 착하고 친절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착한 아이 증후군)"가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는 나'. 거절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고, 남들 앞에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었다. 그렇게 나는 남들을 위한 "친절한 안나씨"가 되었다. 어느 정도 심한 상태였냐 하면,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에도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라며 눈치를 보는 정도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만 신경을 오로지 쓰다 보니 정작 내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픔은 자신의 일부이다. 살면서 상처입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픔은 자신의 일부이다. 겪은 것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다. 극 중에서 금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딴 사람들이 비웃건 말건 자기 식대로 살아간다.
  
- 맥스무비 인터뷰,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아픔은 자신의 일부이다.


친절한 안나씨의 모습은 사실 내 아픔의 일부이다. 내 눈 위에서 빨갛게 보여주고 있는 아픔의 신호, 그리고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 남들에게만 착하고 친절하게 보여지길 바라는 아픔의 신호. 그렇다면 이 아픔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금자씨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직면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아픔의 신호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일순위었다.



참고했던 글  

맥스무비 인터뷰,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 - 아픔은 자신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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