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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틔우머 May 11. 2023

어느 날 바다가 나를 불렀다

나를 안아주는 바다


어느 날 바다가 나를 불렀다.

나의 감정 상태를 항상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그는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오랜만에 그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보고 싶었다.

2시간 끝에 겨우 도착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와 나, 둘만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온 내가 반가운 듯 거친 파도로 환영했다. 난 한참을 말없이 그 앞에 서있었다.

갈수록 거세지는 그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찬란한 윤슬을 보여주기도 했고, 우중충할수록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밤에는 낮에 가려졌던 그의 소리를 비밀스럽게 들려주기도 했다.


이번에 그는 다소 낯선 모습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다가 바위에 철썩, 또 그새를 못 참아 연이어 치솟는 급하고 사나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번에 그는 다소 거칠고 우울함이 가득한 상태여서 나를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불렀다.


사실, 그가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난 상관없었다. 그의 모든 게 다 좋았다. 

밝으면 밝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나 역시 그 앞에선 감추고 싶은 모습까지 다 드러낼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묵묵하게 내 곁을 지켜줬다.

행복할 땐 옆에서 같이 빛났고, 눈물을 펑펑 흘릴 땐 그저 잔잔한 물결로 나를 안아줬다.

이번에 그를 보았을 때, 나의 모습이 비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게 처참했지만, 그는 한결같이 나를 안아줬다.


그는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 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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