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시&노트

by 여상

[거제도]


몽돌 하나를 주워 씹으며

가로로 찰랑이는 술잔의 수면을 바라본다

적시고 돌아섰다가 다시 적시고

돌아서는 이야기


목소리가 깨운 아침에는

어디로 갈지 몰라서

햇살이 구겨놓은 커튼을 열고

간밤 별들의 이야기를

파랗게 녹여버린


해변을 거닌다

검은 속살의 침묵

헤아림 를 어루만짐과

묵묵히 허락한 하강의 시간들


'눕고 싶어.'


별빛 아래 무너진 바벨탑과

빈 소라의 노래

오래전 큰 바위가

눕던 이야기


밤이 오면 세상은 모두

가로로 눕고, 높이가 같아지기 위해

가로로 찰랑이는 것들을 생각한다

꽃잎을 띄운 목욕물을

별들을 삼킨 검은 수평선을


따뜻하게 덥혀진 몽돌 하나 집어드는 것


주머니에 넣어온 몽돌 하나

해변이 무너지고

목소리가 찰싹거린다






note

찬기운을 머금고 있는 청량한 바람과 따뜻하고 맑은 햇살이 봄의 생동을 아낌없이 발산하는 어느 날의 오후, 거제도 해변을 걸었다.


몽돌.... 검고, 둥글고, 침묵하는 것들과 이를 대변하려는 듯 끊임없이 속삭이는 파도의 말들....


파도와 돌들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려 애쓰는 대신 수평선의 높이에 맞추어 가로로 눕기를 택한 듯 보였다. 그리고 파도의 반복되는 손길. 몽돌은 자신의 진실한 검은 속살을 드러내, 깎이고 다듬어지는 운명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해체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주의 마음에 순응하는 검허한 수용의 미학. 아침하늘이 간밤의 별들을 삼켰다가 밤이면 새 것인양 넌지시 꺼내어 놓듯이, 우리 또한 하루를 견디느라 날이 선 모서리를 매일 밤 자애로운 수평의 품에 눕혔다가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리라.


공허하고, 수다스럽고, 경쟁적인 하루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꿈의 파도에 씻길 수 있기를, 날선 신경의 모서리들이 둥글고 원만하게 마모되어 있기를 희망하면서....


검은 수평선...... 무지개의 꿈, 닿지 못할 이상, 지독한 허무, 돌아섰다가 다시 적시는 파도의 문법, 포기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 이분법의 해체, 그리고 수평의 무애(無厓).


주머니 속에 작은 몽돌 하나를 넣고 걸으면, 바다가 찰랑이고, 누워있는 수평선 위로 별이 뜬다. 파도가 엎어지는 해변의 어둠 안에서 몇 개인가 지니고 있던 경계들이 무너져 내리고,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번지는 오래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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