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by 여상

[그림자]


너의 그림자를 꺼내봐

비 내리는 거리를 걷다가

축축하게 젖은 그림자라도

괜찮아


보도블록의 어긋난 요철 위로

일그러지고 펴지다가,

지나는 사람들과 부딪혀 섞이며

분열하다가,


어느 불빛 많은 광장

멈추어 서서, 흐릿하게

여럿이었던 너의 그림자를


내 그림자를 봐

먹구름에 숨어드는 초승달처럼

해지고 파리한 내 모습


루한 내 손 위에

손을 얹도 돼


무겁지 않아

네 그림자에 밟혀도

아프지 않아

우리 생애 가장 경건했던,

가장 비밀스러운 연대


기억해

푸른 하늘의 시간들을,

흑요석처럼 안으로 빛나던

너의 그림자를


불빛 없는 밤이 오면

모두가 사라지는

아니,

모두 하나가 되는—


안온한 어둠의 새가 날개를 펼친 밤


한없이 널따란 그림자 품에서

꿈 없는 잠을 자는 거야







#그림자 #동행 #치유 #위로

Image.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목련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