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시&노트

by 여상

[3월]


어제 보다 황금빛 햇살의 밀도가

촘촘해진 거 같지 않아?

3월,

아직 조금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생생하네.


모자를 쓴 박새들의 통통한 배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며,

흔들흔들

봄을 깨우지.


"어서 일어나, 같이 놀자."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

풀뿌리가 새 숨을 쉬고,

씨앗 껍질 빼꼼 열리고,

연약한 새싹들이 "영차!"

흙을 들어 올리며,


야무진 풀대를 키울 거야.

믿을 수 없겠지만, 어쩌면

커다란 나무가 될지도 몰라.


'네가 기다려 준다면.'


3월은 그러한 날들.

얼음 녹은 개울에는

이제 곧 시작될

치어들의 군무,

메마른 마음을 함초롬 적셔주는

순진무구한 춤.


너는 어디쯤 오고 있니?


켜켜이 쌓아놓은

추웠던 기억들이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너는 어디쯤 다가왔니?


아, 여리디 여린 새순이 돋아났네.


아니면.... 벌써 와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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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s note

아직 바람 끝에 찬기운이 배어 있지만 3월의 햇살은 왠지 2월의 그것보다 챙챙하게 느껴진다. 까만 비니모자로 멋을 부린 박새들이 귀엽기 짝이 없는 통통한 배를 내밀며 연둣빛 봄물이 차오르는 가지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다니고, 맑게 흐르는 개울의 얕은 곳에는 벌써 치어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다. 추위와 굶주림의 고비를 넘긴 산야에 생명의 연쇄반응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3월이다.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봄은 이토록 작고 연약한 것들의 몸짓으로 시작된다. 산책을 하다 보니 봄의 사물들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다. 아니, 느낌이나 비유가 아니다. 분명히 반기고 있었다. 나와도 관계를 맺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고, 봄의 생명들이 명랑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3월의 맑은 공기. 아직 시린 겨울의 기억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새싹들도 말을 걸어주었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감탄사 한마디가 세상을 차갑게 덮은 얼음장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듯, 때론 수백 마디의 관념적 사유보다 흙을 머리에 이고 일어서는 어린 새싹의 모습이 마음을 더 부드럽고 환하게 열어준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물가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나도 가만히 마음을 열어 본다.


지난 삶에 대한 돌아봄이란, 어느 시점에서든 대체로 아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것들 중에서 어디 아프지 않은 것이 있던가? 사연이 무엇이던 고뇌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혹한을 겪어낸 들짐승만이 지금 봄을 살고 있다. 티 없이 환하게 웃는 이들일수록 종종 성실하게 고통을 겪어낸 사람들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치열한 고뇌 끝에 도달한 투명함이 그들에게 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평범함'일 것이다. 그런 이들일수록 나에게 '더불어 함께 살자'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새싹과 거대한 나무 사이에는 '믿음'과 '기다림'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과 기다림 속에서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다. '큰 나무의 기적'에 동참할 조건과 자격 역시 믿음과 기다림이다. 박새의 노래와 낭창거리는 연둣빛 가지의 인과(因果)처럼,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다. 서로 고뇌하고, 믿고, 기다리며 상생했을 때, 모두 '투명한 평화'에 도달하게 되리라.


"너는 어디쯤 오고 있니?" 이 봄에 나에게 묻는다.




#3월 #봄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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