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함이 짙게 배어 있는 글의 향연
인생이란 결국 '지금 여기'가 아닌 그저 '아직 여기'일 뿐
237p
작품의 겉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녹아들기엔 패전 이후 일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직접적으로 전후의 암울한 분위기를 다룬 건 아니지만,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사쿠라'라는 인물이 가진 본질적 슬픔을 거기서 오기 때문에, 결국 내가 가진 패전 일본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역경 극복의 소설이며, 다른 면에서는 찬가의 소설이기도 하다. 슬픈 진실을 마주하고 깊은 상처를 입은 한 주인공,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아물어가는 상처, 마침내 그 상처를 딛고 다시 그곳에 올라서는 모습이 잘 짜인 성장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이 작품이 가진 고유의 순수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이해가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작가 본인이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에는 더더욱이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너무 섣불리 이 책에 도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 본인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다는 점, 이 아이와 공존하는 것이 작품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은 숙지해야만 한다고 본다.
30년을 널뛰는 소설인 만큼, 서사적인 부분에서는 이야기할 소재들이 많지만 짜임새 있게 감상을 풀어 놓을 자신이 없어 감내하려 한다. 단 하나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제목만 보고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할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근원적으로 치유의 이야기이며, 극복의 이야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