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되는 의지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들
'실현시킨다'는 말은 유희자들이 즐겨 쓰던 표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생성에서 존재로, 가능한 것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도정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생각이 모두 그렇듯 여기엔 원래 시작이라는 것이 없으며, 생각이 있는 곳이면 유희는 늘 있어 왔기 때문이다.
『유리알 유희』는 읽기 어렵다는 언제부터 생겼는 지 알 수 없는 인식 때문에, 헤세의 책은 아직 나에겐 어렵다는 막연한 한계 설정 때문에 난 이 책을 인식의 밖에 두고 있었다. 언젠간 읽어야 할 책이지만, 정작 장바구니에는 들어 있지 않은 그런 책. 지난날의 내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정신의 집합체이자 결정체인 『유리알 유희』를 접한 건 축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책이 늘 그렇듯, 동양적 사상이 짙게 배임과 동시에 대비되는 두 가지 속성이 대치한 뒤 절충하는 형식이 이 책에도 그대로 나온다. 특히 동양의 '도제' 사상이 서사를 이끄는 중심이며,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일단, '유리알 유희'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작품 이해에 필수적이다. '유리알 유희'에 대한 명확한 묘사는 없지만, 정신적인 각성 상태? 유희?라고 보면 된다. 작품은 카스텔리안이라는 국가의 유리알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와 유고를 다룬다.
후대에 전설로 남아 있는 요제프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는 요제프가 느꼈던 감정들을 따라가 여러 가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된다. 정신적 수양이 과연 속세의 것들보다 우월한 것인가? 책임과 자유의 반비례적 관계는 거스르기 어려운 것인가? 등등.
요제프의 삶 속에 나타나는 도제, 즉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그의 인생 전반을 설명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커가면서 만나 온 음악 명인, 데시뇨리, 야코부스 신부 등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떻게 보면 요제프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요제프의 스승이었으며 제자이기도 했다. 어디서든, 어느 위치에서든 제자이고 싶어 한 요제프의 삶의 태도에서도 배워야 할 점이 많이 있지만, 스승-제자의 순환적 관계 재생을 통해 요제프가 원하는 세상이 결국 도래한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다.
항상 대비되는 관계에서의 도제에서, 마침내 합을 이루는 관계의 도제가 완성됨에 따라 요제프가 원하는 세상을 그의 의지를 잇는 자들이 만들었으며, 그 역시 음악 명인과 같은 전 세대의 스승들의 의지를 이어 마침내 이뤄냈다. 잘 짜인 순환적 구성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나도 누군가의 의지를 잇고 있으며, 내 의지 역시 누군가가 잇고 있겠지.
문득, 작품의 배경인 카스텔리안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걱정 없이 정신적 수양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런 곳. 지금의 내가 속세 없이 정신 수양이 가능할지는 예측불가능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그런 곳에 살아도 꽤 행복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나는 나만의 작은 카스텔리안 속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어느 속세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강하게 저항하는 나만의 카스텔리안. 각자의 카스텔리안을 가진 동료들과의 유희. 아마, 우리는 각자가 삶의 명인일 것이다. 카스텔리안을 이끄는 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