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지, 뒤플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노벨경제학자들의 생활 밀착형 연구의 산물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해진 반바지,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투적인 개념으로 단순화하려는 버릇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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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만화 속 등장인물로 취급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생활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문 中
내용은 결론에 있는 저자들의 요약으로 정리하는 게 보기도 좋고 이해도 쉬울 것 같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은 결정적인 정보가 부족하거나 그릇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둘째, 가난한 사람들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한다. 셋째, 일부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아예 외면하거나 받아들여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과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계좌(운이 좋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면)를 개설해도 예금이자가 거의 없고 대출받을 때는 높은 이자를 부담한다. 넷째, 가난한 나라는 가난해서 혹은 불행한 역사가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가난을 해결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마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구촌 사회의 숙명이다. 크게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해주자' vs '시장 경제에 맡기자'라는 두 입장을 제시하고, 저자들은 각 주장의 모순을 지적해 그나마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다. 가장 크게 강조하는 것은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가난한 국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국제기구나 선진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공무원의 부패로 인해 제대로 원조의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는 나라가 태반이다. 저자들은 이 점을 지적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약간의 개입만으로도 효과적으로 부패를 척결할 수 있음을 실증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우리들은 가난이 지구에 엄습해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왜냐, 결국은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작, 가난에서 탈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국민들도 지금은 가난에 무심하고 무감각해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극복하기 어려운 가난을 이겨낸 한국에 대단함을 느낌과 동시에, 이런 시기를 이겨낸 우리의 멀지 않은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내 생각에는, 가난은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피지배국, 정부 부패, 정부의 무능, 정부에 대한 국민의 낮은 기대 등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가난이라는 복합적 산물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굴레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역시 최우선은 정부의 변화다. 변한 정부와 비정상적 시장으로의 약간의 개입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속의 국민인 우리도 가난을 항상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가난을 극복한 지 얼마 안 된 나라의 국민으로서 언제 다시 가난의 늪으로 빠질지 모르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이 더욱더 와 닿는 건, 실증 연구들을 토대로 모든 이론과 논리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이고 상투적인 논리만으로는 가난이라는 추상적 복합개념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가난을 대하는 각종 대안에 대해서 명확한 실증 사례들을 통해 효과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설명해줌으로써 이해가 더욱 잘 됐던 것 같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멀게만 느꼈던 가난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구체화되고 얼마나 이것이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