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현재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생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춰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그러나 공상적이지는 않다.
10년 동안 한 잡지에 연재한 미야모토 테루의 수필을 모은 단편집.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에 한 번 놀라고, 객관적으로 불행하다고 볼 수 있는 그의 삶에 한 번 놀라고, 그 삶의 고단함을 딛고 일어서 비로소 자기의 생을 쟁취한 저자의 의지에 또 놀랐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소설가가 되어서 무슨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수록된 19편의 단편에 다 담겨 있다.
평이한 작품들도 있지만 뇌리에 깊게 박힌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공황장애가 가져다준 것』이라는 단편이다. 25살에 공황장애에 걸려 34살에 그 병명을 알고 65살까지 그 병을 앓은 미야모토 테루는 공황장애라는 지옥 같은 정신적 압박 속에서도 어떠한 의미를 찾았다. 그를 소설가로 만든 것이 바로 공황장애 덕분이며, 당장 눈앞에 다가온 나쁜 일을 곧 있을 좋은 일의 징조로 인식함으로써 현실의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정신력을 공황장애로부터 찾았다.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나는 공황장애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그것이 힘든지 가슴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엄청난 정신적 위협이 된다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다. 그런 질환을 갖고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품을 쓰고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을 더 뛰어넘어, 그는 그 질환으로부터 삶의 의지를 떠올렸다. 물론, 겪을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후대의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외적 우연을 내적 필연으로 만듦으로써, 그의 삶을 더 단단하게 무장한 것이다.
이 단편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그가 가진 삶의 긍정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미야모토 테루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 게 아니라 나도 내 생의 실루엣을 글로써 남겨 보고 싶다. 아마, 현재의 내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천천히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의미를 부여받기를 기다리는 과거의 몇몇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어떤 때의 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일 년에 두 편 수필을 쓰는 모임을 만들 것이다. 모임의 이름은 『실루엣』. 글이 꽤 모이면 자그마한 책으로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과거의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 보려 한다. 꽤나 잘 쓰여져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글이 되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