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농담』

농담은 과연 실수일까?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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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지난 며칠간을 내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내 인생의 일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391p



농담.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사전적 정의다. 농담으로 인해 반동분자가 되어 당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끌려가 몇 년을 탄광에서 일한 루드빅. 그는 한낱 농담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완전 뒤바뀌어 지옥으로 향했다고 생각한다. 장난삼아 한 말로 인생이 뒤바뀐 것에 대해서는 뭔가 과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말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흔한 말로, 말실수로 인해 나락을 향해 가는 건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사실, 나는 농담을 실수의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다소 낮추기 위한 정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상황을 멀찍이서 바라보려 노력하니, 루드빅이 처한 상황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가 느끼는 농담에 대한 처사의 불만에는 다소간 저항감을 갖게 된다. 그냥 내 직관적 감정은, 자기가 내뱉은 말 혹은 글에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그 사회가 정당한가에 대한 여부는 별개의 문제고, 루드빅이 당시 사회주의에 반하는 사상을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밝혀지게 된 최초의 경로가 농담이었을 뿐이다. 고로, '철없는 농담이 빚어낸 뒤틀린 인생'보다는 '단 한순간의 말 혹은 글로 인해 뒤바뀐 인생'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농담에 대한 언어적 접근을 이쯤에서 접어두고, 루드빅의 복수심 불타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의 농담에 추방이라는 선고를 내린 제마넥이라는 인물에 대한 증오는 가히 '농담적'이게 코믹스러우면서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제마넥의 부인을 유혹해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으나, 제마넥은 다른 애인이 있었고, 되려 농락당하고 만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유명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여기서도 나오는 듯하다. 각각의 해악 같은 감정들은 결국 주인을 지옥에 머무르게 한다. 그런 감정을 내려놓는 순간 루드빅이 잠시나마의 광명을 보았듯, 정신이 현실을 만드는 법이다.



그의 복수가 무너지는 과정 속 변비약 해프닝은 그의 농담보다 더 농담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진짜 농담이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루드빅이 무심코 보낸 편지 속 글이 농담이 아니라, 이런 게 바로 농담이라고.



농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농담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나? 농담은 과연 실수의 영역에 속하는가? 농담으로 인해 생긴 불이익은 과연 부당한 것일까? 농담은 과연 진지하게 해석될 수 없는 성역에 있는 무엇인가? 이 책은 자주 사용하는 한 단어에 대한 깊은 고찰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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