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서 실존으로,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존재의 불행
실존한다는 것, 그것은 권태를 느끼는 것이다. 우연성, 불안전성, 평범한, 불만, 이러한 것들이 바로 실존의 특성들이다. 실존은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실존하게 되자마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벗겨버리는 것이며,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는 것, 간단히 말해 무언가를 완수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인 자신의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존의 나약함에 그의 한계성이 덧붙여진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대표작인 『존재의 불행』, 자칫하면 존재에의 비관론적 시선이 가득할 것 같은 암시를 주는 제목이지만 그렇지 않다. 존재가 마주할 불가피한 불행을 선과 악, 존재와 실존에의 깊은 탐구 속에서 발견한다. 날카로운 철학적 시선이 넘쳐나 읽기 쉽지 않으나, 분명 저자의 글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통찰을 줄 수 있기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읽어나가길 바란다.
책의 전개는 선과 악에 대한 고찰이 주를 이룬다. 선과 악에 대한 정의와 상관관계, 그것을 소화해 내는 인간의 갖가지 토사물들. 선과 악은 불가분의 관계로, 악이 없으려면 선도 없어야 하고, 악이 있으면 선도 있어야 한다. 양극성의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말은 즉슨, 우리는 악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은 인간의 가치 판단의 영역이기에, 누구에겐 선이 다른 이에겐 악이고, 누구에겐 악이 다른 이에겐 선일 수 있다. 따라서, 가치 판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선과 악은 항상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존재의 불행 중 하나다.
저자는 존재와 실존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실존할 것을 주문한다. 존재는 그냥 상태고 실존은 의지가 담긴 살아가는 존재라고 이해하면 된다. 인간은 실존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자유와 함께 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선택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선택의 순간들에 매번 직면하게 되어 고통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결국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와 그에 따르는 선택이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고통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이 또한 존재의 불행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존재의 불행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 듯하다. 존재의 불행에 대한 객관적 진술 이후 선택의 몫은 독자에게 남겨둔 것 같다. 책의 내용을 깊게 곱씹으며 고뇌하는 고통 역시 존재의 불행 중 하나일 수도? (실존의 방향 아래 자유로운 독자가 이 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필연적 존재의 불행 앞에서 좌절해야 되겠는가. 피할 수 없는 것에 몸부림쳐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숙명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런 존재의 불행이 있음에도 나는 실존함으로써 매 순간 고통을 맞이하겠다. 그게 내 실존의 크기와 질을 더 키워줄 것이다.
나중에 더 깊은 사유와 식견을 갖고 재독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