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도망치지 않기
2012년, 십 년도 더 지난 예전 일을 회상한다.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서 『인시디어스 1』을 관람했던 때다. 공포 영화를 즐기지도 않고, 오히려 기피하는 나였지만 등 떠밀려 어쩌다 보게 된 영화. 난 귀신을 믿진 않지만, 그런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꽤 무섭다. 그래서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 같은 때에 실눈을 뜨고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공포감을 이겨냈다.
나는 왜 두 눈을 질끈 감는 것 대신 실눈을 뜨는 것을 선택했을까? 그 순간의 공포를 이겨내기에는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시각을 완전 차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그러기는 싫었던 걸까? 도망치긴 싫되 피해 가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을까?
예상되는 두려움에 대한 시각적 노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공포를 극복했던 그 경험이 지금은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공포 영상 이외에도 나에게 그와 비슷하게 공포감 내지는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다. 마음의 불안감, 혼란스러움 등이 그것들이다.
내면의 이런 두려운 요소들을 나는 실눈을 뜸으로써 극복해 나간다. 결코 두 눈을 질끈 감지 않는다. 도망치긴 싫기 때문이다. 내 내면에 떠오른 것들이 유익하든 유해하든 간에 마주치지 않고 도망가는 건 있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실눈으로 마주하며, 존재는 확인하되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실눈을 통해 어설프게 보이는 실루엣.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면의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극복의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마주할 필요는 없다. 두려움에 최대한 적게 노출되면서,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면의 두려움과 정면 대결 (부릅뜨기) 해서 극복하는 방법도 좋지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두 눈을 질끈 감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면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이다. 내면의 문제조차 맞닥뜨리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통제 불가능 요소가 더 많은 외부의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내가 언급한 '실눈 뜨기'와 같은 방패가 있어야 한다. 삶은 안과 밖으로 나를 굴복시키려 겨냥하고 있는 수많은 창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