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연 『순간의 존재 :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
필자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매우 역겹게 느끼는 까닭은 그 안에 고통과 책임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거의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히 하이데거가 고통과 책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죽음이 일상화된 시기를 살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어찌 일상세계를 죽음으로부터의 단순한 도피처처럼 묘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이데거를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을 읽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나의 성급함에 아쉬운 마음이 떠오른다.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그 언명들에 대한 세부적인 접근과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는 이 책은 깨나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철학서 독서의 목적은 여러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철학을 적절하게 내 삶에 녹여 스스로 삶을 더 낫게 이끌어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목적 아래에서, 접하는 철학을 이해하고 앎과 동시에 그 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유명하고 위대한 철학의 맹목적 추앙만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은 본래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존재자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각각의 역사가 다른데 한 개인(그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의 역사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철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에도 맞지 않은 비이성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 철학서 독서의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지만, 내가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가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직접적 효과가 떨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이해도가 꽤 출중했다면 엄청난 만족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하이게더 존재론의 핵심적 언명 중 하나인 죽음의 선구성으로 인한 일상세계로의 도피는 저자에 따르면 꽤 모순적이다. 하이데거는 일상세계를 하나의 도피처로 정의하는데, 하이데거가 살았던 나치의 시대에는 오히려 일상세계가 죽음의 세계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다소간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은 역사적이라는 본질에도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외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 내용들을 서평에 옮겨 적는 건 내가 글을 적는 이유에 전혀 맞지 않다. 이 책은 머지않아 재독을 할 계획이다. 하이데거 서적 몇 개를 더 읽고, 그 이해도를 한층 끌어올린 다음 다시 읽겠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상세한 내 감상을 풀어놓겠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접하며, 사유의 벽 앞에 좌절하는 한 인간이 된 것만 같다. 정복 불가의 철학으로 유명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이지만, 그 드높음에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도, 기어코 그 높음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지에 다시금 불타오른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어렵고 난해한 철학들을 읽어나가고 있는지. 그것은 오로지 내가 가진 사유의 확장을 통해 삶을 더 윤택하고 아름답고, 용기 있게 이끌어 나가고 싶은 존재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