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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Nov 19. 2023

[서평] 나라는 존재자의 존재를 향한 여정, 지금 시작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1, 2』


범접할 수 없는 사유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문제로 삼는 존재자이며 그 존재를 떠맡아 완수하는 것을 과제로 안은 존재자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는 운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운명에 응답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운명이 주는 고통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간다.



내 역대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히는 『니체 극장』을 쓴 고명섭 작가의 후속작으로 『하이데거 극장』이 나왔다. 『니체 극장』을 읽고 니체의 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올라간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도 매우 컸다. 하이데거의 높은 사유에 부딪쳐보고자 하는 내게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거친 산을 같이 올라가는 동반자와 같았다.


인물의 일대기를 샅샅이 훑는 전개 덕분에, 하이데거의 삶과 더불어 그의 철학과 사상을 접할 수 있으니 몰입과 발현의 이유 등을 더 상세히 알 수 있어서 하이데거 특유의 모호함이 꽤 해소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철학의 독자적 언어가 있는 하이데거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철학이 다른 철학보다 어려운 이유는 꽤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진술 명제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진술 명제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 꽤 접한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고에 거리낌이 없을 터인데,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형이상학을 뛰어넘는 철학이기 때문에 그 유일무이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이데거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를 파헤치고자 한다.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존재가 가정된 채로 그 근본을 파헤친다. 여기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하이데거의 대표 저작으로 알고 있는 『존재와 시간』은 미완성작으로 하이데거의 전기 철학 사상이 담긴 책이고, 후기 하이데거는 거기에서 전향이 일어나 더 발전된 형태로 『시간과 존재』라는 것으로 마침내 그의 사유를 완성한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자란 무엇인가'를 역사성을 부여해 해명해나가는 과정이었다면, 하이데거가 물었던 건 '존재란 무엇인가'였기에 그 한계를 보완해 후기에 완성했다.


그의 사상을 이렇게 저렇게 정리할 엄두가 나진 않는다. 세계의 수많은 석학들이 잘 정리해놓은 자료들이 많음에도 20세기 가장 난해한 철학자로 꼽히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내가 뭐라고 정리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의 철학, 사상, 사유들이 조각조각 내게 스며들어 '세상에 던져진 채로 미래에 내 가능성을 기투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 번쯤은 빠져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여기에 던져졌고, 존재는 운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는 그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렇게 운명이 주는 고통 속에서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죽을 자로서, 곧 무로 떨어질 존재자로서 그 피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쳐 삶과 세계의 존재를 확연하게 느끼고 경험하게 될 역사적 운명 앞에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가 앞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갈 우리의 삶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나치에 참여한 전적이 있는 하이데거이지만, 우리가 아는 나치 참여 세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도 이 책에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 나치와의 연관성을 이유로 하이데거를 싫어했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설령 그 설명이 부족할지언정, 나치라는 오명 때문에 그의 사상과 사유를 적대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손해라는 생각이다.


그가 50년 넘게 사유하며 구축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후대에 아마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가 70년 전에 말한 기술 문명의 습격이 그대로 현대에 벌어지고 있기도 하고, 갈수록 존재에 대한 사유는 적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존재자가 있을 때만 존재하고, 존재자는 존재함이 있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존재란 우리와 붙어 있으면서도 저 멀리 있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존재를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존재자들 중 인간만이 존재에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자의 존재를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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