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로서 20대 초반 일찍 사회적 성공을 맛본 비욘은 어느 날 집 안 부엌에서 어떤 빛을 보고 (나는 이 순간을 현존하는 순간으로 읽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승려가 된다. 그렇게 약 20년을 승려로 지낸 그의 깨달음을 가득 담은 그런 책이다.
우리는 보통 나와 내가 한 생각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지점을 이야기한다. 생각은 나와 분리된 무엇일 뿐이고, 심지어 그 분리된 생각 자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우리가 그런 생각에의 의식적 거리두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삶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들은 개인의 통제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중에 생각은 특히나 통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사실 '생각을 통제하다'라는 말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나를 통제하다'에 의미가 닿아있다. 생각이 떠오르는 건 거의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생각에 영향을 받는 나는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저자는 이 통제의 주문을 '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되뇌며, 내게 떠오른 부정적 생각의 의미를 축소하고 비틀어 결코 받아들일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게 만든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을 한 개인의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나도 주문만 외치지 않을 뿐이지, 내게 떠오르는 부정적 잡념을 단숨에 제압한다. 난 내가 틀렸다고 되뇌진 않고, 그 떠오른 생각의 존재 가치를 없애버려 소멸시키려 의식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타인을 대할 때도 꽤 용이하다. 나 스스로와 생각을 분리하여 인식할 줄 안다면, 타인 역시 타인 그 자체와 타인이 한 생각을 분리하여 인식할 수 있다. 이 인식의 끝에는 증오와 비난, 분노 등 타인을 향해 내뿜을 수 있는 폭력적 감정의 소멸로 이어진다. 이런 사고방식은 타인 자체에 대한 화살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 역시 틀린 생각을 통해 한 행동 (나에게 보이는 건 타인의 행동일 것이기에 행동으로 정의함) 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사고방식은 일종의 타인의 면죄부 역할을 대신한다.
나는 흔히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이 사고방식을 무적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이유는 내가 상처받거나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일거에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보면 안다. 인간은 실제로 단순해서 내가 의도한 대로 행동하면, 내가 의도한 사람이 점차 되어간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주문은 온전히 나를 지키기 위한 주문이란 것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