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연 『순간의 존재 :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
일상세계란 단순한 죽음의 도피처가 아니라 실은 일종의 무덤-세계라는 진실, 규범으로 인해 규범이 금하는 바를 행할 가능성의 존재로서의 현존재가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항 가능성이 언제나 이미 임박한 것으로서 일상화된 세계라는 진실이다.
2달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하이데거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 좌절해 꽤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이데거 극장』을 읽고 다시 펼쳐든 이 책은 두 달 전과는 완전 다른 책으로써 내게 다가왔다.
하이데거에게 일상세계란 죽음의 도피처로써 세인이 사는 세계고, 극복해야 할 무엇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이런 '일상세계의 굴욕'을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작품의 철학과 나름의 논리를 이용하여 비판한다. 일단, 비판의 내용 이전에 비판 자체에 대해서 내가 다소 의문이 생기는 점이 있다. 널리 알려진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 은 하이데거 전기 철학의 정수로, '존재자의 존재'를 시간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본래 '존재자의 존재'가 아닌 '존재 그 자체'의 일반론을 파헤치고 싶었다. 따라서 저자의 비판은 일상세계의 의미를 나름대로 파고들어 논리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존재자의 존재'에 그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에 오직 전기 하이데거에 그 화살이 향하는 게 아닌가 싶다.
비판 내용은 꽤 합리적이다. 아무리 일상세계가 극복해야 할 무엇이라고 할지언정, 결국 현존재인 우리가 살아갈 무대는 일상세계다. 따라서 일상세계를 구성하는 혹은 지배하는 필수적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현존재의 존재를 파고들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저자는 일상세계를 규범의 세계로 정의한다. 규범이란 현존재의 악할 가능성에 대한 족쇄와도 같다. 일상세계의 규범성을 일갈하는 저자는 하이데거가 일상세계를 도피처로써 절하함과 동시에 그런 특성을 알고도 취급하지 않고 무시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 근거는 하이데거가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의 시대, 나치의 시대, 즉 악이 판치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데 있다.
현존재의 역사성을 고려했을 때, 하이데거의 이런 외면은 비판받아 마땅할지 모른다. 왠지 하이데거는 일상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심도 있게 파고든 것 같지 않기도 하다. 하이데거 역시 일상세계를 살았고, 존재의 진리를 파헤치는 행위 역시 현존재의 일상세계 위에서 이뤄질 일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존재의 비본래성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무대로, 본래성을 찾기 위해 극복되어야 할 굴욕의 소재로 일상세계를 '도구적 환원'시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현존재의 존재'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을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이끌고 가는데, 사실 난해하기도 하고 전혀 이해가 없는 작품이라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글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 내용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느 정도 알겠다.
역시 이 책은 하이데거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있은 후 펼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철학 논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이는데,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있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판하는 이 책도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전기 하이데거의 철학에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 전체까지 비판의 범위가 확장되긴 어려움이 있다. 거듭 말하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존재'가 아닌 '존재'를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저자가 전개한 본인의 철학은 '존재자의 존재'를 밝히는 길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내 사유의 확장을 느낀다. 그야말로 두 달 전 나에게 굴욕을 선사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