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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Dec 05. 2023

[서평] 하이데거를 계승하는 규범과 윤리의 존재론

한상연 『죽음을 향한 존재와 윤리 :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






인간이란, 혹은 존재론적 의미로 현존재란, 언제나 이미 규범화된 일상세계 안에서 언제나 이미 규범화된 정신으로 실존하는 존재자이다. 인간 현존재란, 언제나 이미 규범화된 정신으로 실존하는 존재자로서, 순연한 즐거움과 기쁨, 쾌락 등을 추구하는 법을 잃어버린 존재자이다.







면밀하게 인간에게 부과되는 이런저런 윤리적, 규범적 명령들의 의미에 관해 성찰해 보면, 존재론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윤리적, 규범적 명령들이란, 그리고 윤리적, 규범적 명령들 속에 담긴 당위성이란, 결국 인간이 할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기꺼이 하려고 하기도 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현존재'로 치환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를 시간의 개념 아래에서 죽음을 향한 존재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작 『순간의 존재』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라는 철학함의 무대가 결국 그가 도피처로 절하했던 일상세계임을 일갈한다. 일상세계의 비본래적 세인의 무대이든, 죽음으로부터 오는 세계와의 무연관성에의 도피처이든 결국 그런 고찰과 철학하는 행위는 그런 일상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논리 전개의 방법은 철저히 계승하되, 현존재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구축해나간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일상세계는 결국 규범의 온상이며, 그 이유는 현존재가 기꺼이 규범으로 금지할 것들을 할 수 있는 존재자이기 때문임을 명시한다. 현존재를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존재로 설명하면서 규범과 윤리의 존재론적 고찰을 더한다. 이외의 각각의 개념들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이 꽤 인상 깊다.



나의 철학 탐미의 여정의 종착지가 바로 이 책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전작에서는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책까지 읽고 나니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기반으로 저자만의 독자적인 존재론을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닌, 비판이 향한 지점을 자신의 사유로 끌어올려 그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우리가 어려운 철학서를 굳이 찾아서 머리 아프게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대한 그들의 철학을 단순히 암기하기 위함은 아니지 않은가? 생소한 그들의 철학을 암기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대기 위함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들의 철학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시작은 그 독특함에 매료되어 호기심으로 위인들의 철학을 접했을지언정, 그 모험의 끝은 나만의 철학을 구축하는 데 있다.



나 역시 올해 죽음에 대한 깊은 의구심과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여러 책을 찾다 하이데거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책을 읽었지만, 하이데거의 존재론만큼 순수 그 철학 자체만으로 나를 크게 뒤흔든 철학은 없었다. 내가 존재론을 파고드는 사이 어느덧 죽음에 대한 나의 의문에 답이 떠올랐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바로 이게 철학의 존재 이유 아닐까?



어려운 철학을 굳이 찾아 읽을 필요도 없고, 그런 철학을 외울 필요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그들이 일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철학의 구축 속에서 분명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그들의 철학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 가령 의지, 전개 방식, 논증, 통찰, 고찰 등 일반적 개인의 역량을 아득히 뛰어넘는 요소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니체를 통해 철학이란 것이 내 삶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구나를 느꼈다면, 하이데거를 통해 철학이란 것이 내 사유를 이 정도까지 넓혀줄 수 있구나를 느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일상세계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발상과 능력, 그것만으로 하이데거는 탈-인간적 사유의 존재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를 통해 이제 내 시선은 죽음에서 존재로 옮겨졌다. 여태까지는 존재의 필멸인 죽음에 시선이 있었다면, 이제는 더 깊숙한 곳인 존재에 시선이 옮겨졌다.



나만의 완벽한 철학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탐구와 탐미 속 내 삶 자체가 변화함을 느끼고, 이 순간들을 즐긴다. 놀랍게도, 그러면서 나만의 삶의 철학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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