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 『삶의 격』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삶에서 우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기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삶의 격』이라는 제목이 자칫 삶을 수준대로 구분짓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굳이 제목을 빌려오자면, 존엄성의 숙고를 통해 삶의 격을 올리자는 느낌이다.
존엄성. 단어의 시각적 인식만으로도 그 엄중함과 진중함이 느껴지는 이 무게감 있는 개념에 대해 우리는 어렴풋이 각각의 정의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존엄성은 그 성격 자체가 주체의 인식과 기준, 판단에 의해 정의될 것이기에,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인간은 존재 가치가 있다'라는 대전제 아래에 각각의 존재 가치를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존엄성의 확보라고 볼 수 있다.
더 파고들어보자면 구축된/구축될 존엄성은 주체의 관계에 기반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판단은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존재 가치, 내가 바라보는 너에 대한 존재 가치, 너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존재 가치 이 세 가지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존엄성은 철저히 독립될 수 없는 개념임과 동시에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형태의 관계 속에서 영글 무엇임이 분명하다.
존엄성은 관계 속에서 서로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넘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고, 모욕과 비존중 없이 관계를 더 낫게 만드는 따스한 햇살 같은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내게 영글어진 존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나의 관계 속 존엄성은 과연 어떻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어떤 인간 부류는 존재 가치가 없다'라는 극단적 사고방식에서는 탈피한 지 오래되었지만, '모든 인간 부류는 존재 가치가 있다'라는 그 자체만으로 평화적인 그 방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모든 인간 부류에 존재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각각의 인간 부류만의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쪽인 것 같다.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정의하기 되게 조심스럽고 복잡한 개념이긴 하지만, 저자는 각종 사례를 들어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잘 심어준다. 존엄성이 관계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삶의 대부분의 사건들은 존엄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럴 만한 가치도 있다. 옳고 그름 같은 일상적 판단 기준에 존엄성 역시 삽입할 만한 것이다.
존엄성에 대한 인식에 다소 낯설고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나 스스로가 존엄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나의 존엄성 역시 명확해져야 한다. 존엄성은 마냥 차갑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마냥 뜨겁기만 한 것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디에 있는 미지근한 무엇이기에, 사고가 말랑말랑해져야 한다는 누구의 말씀에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