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엉덩이부터 떨어진 기타는, 스프루스 상판 원목의 결대로 가로금이 쩍 가 버렸다. 다행이도 끄트머리여서 기타가 반으로 갈라지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래도 계속 두면 기타의 상판이 뜯어져 버릴 것 같은 흠집이었다. 잠시 넋이 나간 채 기타의 흠집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벌어진 두 나무판이 들썩거리는 틈을 대여섯 번 눌러 보고 나서야, 나는 기타에 금이 가 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난 겨울 일본 여행을 갔다가 사 온 기타여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쓰는 기타와 같은 모델이어서, 어차피 되팔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평생 가지고 갈 기타니까, 게다가 유명한 뮤지션 중에는 구멍난 통기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되니까, 그러니까 조그만 흠집쯤은 생겨도 상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생각보다 감정이 상하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문득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흠집이 생기니 비로소 내 것이 된 것 같아." 라는 말, 어디서 들었었지?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는 친구가 했던 말이었나. 다섯 군데는 넘는 패인 자국이 있는 노트북을 보여주며 했던 말. 흠집이 생기기 전에는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어디에 긁혀서 생채기가 나지는 않을까 스트레스를 잔뜩 받다가, 흠집이 하나 둘 늘어가니 중고로 팔 수도 없게 되버려서, 그제서야 내 것처럼 편하게 쓰게 된다는 말. 그 말을 듣고부터 물건에 생기는 흠집에 대한 내 생각이, 그저 가치가 떨어지는 생채기일 뿐이라고 여겼던 과거와 조금은 달라졌던 것 같다. 그렇게 액정 보호 필름을 붙이지 않은 스마트폰의 액정에는 실금들이 가득해졌고, 하얀 운동화도 언제부턴가 잘 닦지 않아 광부의 신발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 흠집들로 인해 공장을 거쳐 나온 흔한 물건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물건이 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턴의 흠집,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모양의 얼룩, 그런 것을 가진 세상에 하나뿐인 내 물건.
문득 생각이 내 손바닥의 반점에까지 미친다. 오른 손바닥의 3할 정도를 덮고 있는 검은 반점은, 어릴때부터 나의 컴플렉스였다. 손을 씻고 오라는 짖궂은 친구들의 놀림에, 나는 왜 지우지도 못하는 이런 큰 반점을 달고 태어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특이한 점이 나중에 큰 사람 될 점이라고 하던데, 넌 난리통이 나도 그 점 때문에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네, 같은 이야기들. 그런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단순히 화제를 돌리려는 시도로 생각해서 좋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들은 단순히 자식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자식이니까, 손바닥에 검댕이 묻은 것 같은 큰 반점도 내 자식의 한 부분이니까, 흠이나 놀림거리가 아니라, 내 자식만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나에게 건넸던 말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의식의 흐름 끝에, 나는 내 기타의 갈라진 틈을 지워졌으면 하는 흠, 가치를 떨어뜨리는 생채기가 아니라, 내 기타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함, 독특함, 개성,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