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쯤, 그러니까, 장염이 내 배를 찌르고 난 뒤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다시 한번 나를 깨우는 복통에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나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사람은 힘들 때만 신을 찾는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복잡한 마음에 우스우면서도 서글퍼졌다. 신 만큼이나 전능하게 느껴지면서도, 신에게 느껴지는 거리감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고향의 어머니.
병원이 아침에 꽤 빨리 연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9시에 가야 하는 학교나 직장을 가기 전에, 병원을 들렀다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던 것 같다. 그 시간부터 진료를 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편한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항상 아픈 손님으로 문전성시인 그 시간대의 병원을 보면 그런 마음이 옅어지다가도, 어지간한 직장인보다도 빨리 출근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의사는 편치 않겠군 하고 다시 되뇌이곤 했다. 하지만 내가 배탈이 난 날, 오늘의 병원은 참 늦게도 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처럼 블록마다 24시간 하는 병원이 있었다면 하는 투덜거림. 다섯 번이나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낸 몸과 씨름하다, 느릿느릿 찾아온 집 앞 내과의 오픈시간에 집을 나섰다. 평소엔 익숙하게 다니던 집 근처 골목들이 오늘은 너무나 버거웠다. 하늘은 왜 이리 우중충하고, 차들은 왜 이리 날카롭게 달리는지.
의사는 뻔한 이야기를 했다. 장염 증상이다. 여름이라 탈이 난 것 같다. 오늘은 미음만 먹고, 며칠간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라. 처방전에는 뻔한 알약들, 그리고 이름만 봐도 그 걸쭉한 질감이 느껴지는 지긋지긋한 혼탁액까지. 뻔한 병이니까 뻔한 이야기를 하고 뻔한 약을 주었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뻔한 이야기를 듣고 뻔한 약을 받으려고 병원까지 와서 비싼 돈을 내야하나,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집에 오니 영양 부족에 바깥 바람 기운이 더해져 나른하다. 하지만 드러눕지 않고, 아프면 방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문득 떠올라, 방 청소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를 한게 일주일 전이었나, 먼지며 머리카락이며 하는 것이 평소에는 눈에도 띄지 않더니만, 하얀 먼지포에 수북하게 붙어 나온다. 나를 구박하던 어머니가 또 생각이 났다. 청소는 매일 해야한다며 내가 앉은 책상 다리 아래로 청소기를 들이밀던 어머니. 다시 한번 어머니의 전능함을 느낀다. 나 같이 더러운 사람이 사는 방을 그렇게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청소를 끝내고, 점심 구색을 맞추기 위해 미음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병은 전혀 낫지 않았다. 뻔한 이야기를 듣고 뻔한 약을 먹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뻔한 것들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일어나지도 못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누워있으니 열감이 더해지는 것 같아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다. 너무 아픈데, 쉬면 더 아플 것 같아 깨어있으려 하는 아이러니함. 막상 책상 앞에 앉기는 했지만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고, 머리는 띵하면서 살짝 따끈하고, 배는 한시간 반 주기로 쿡쿡 쑤셔 오고.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가족을 생각한다. 이렇게 아프거나 힘들 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가족 생각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프면 서글프고, 서글프면 가족 생각이 나고. 아픔과 서러움과 가족 생각은 그렇게 삼총사처럼 붙어다닌다.
아픈 어른은 그렇게 가족 생각을 하며 책상 앞에서 우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