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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ul 22. 2017

허전함을 덜고 싶어서


 "허전함을 덜어낸다."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표현 같다. 허전함이라는 것이 무엇이 없어서 생기는 기분인데, 그것을 덜어낸다니. 그럼 허전함을 덜어낸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더 큰 허전함?

 요새 뭔가를 사는 일이 늘었다. 그렇게 빨간 텔레캐스터를 사고, 한 달도 안 되서 다시 중고로 내놓았다. 적어도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내가 가지고 있는 허전함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허전함을 떨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딱히 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쓰지도 않는 걸 가지고 있기만 하면 괜히 값이 떨어질텐데, 그러기 전에 팔아야 하나. 그렇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기타를 손에 넣고, 한 달간 고민만 하다가 팔아버렸다. 기타 한 대가 더 - 일본에서 사온 통기타 - 있으니까, 없어도 그만이니까, 그리고 너무 습한 내 자취방은 기타를 방치하기엔 좋은 환경이 아니니까.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 달 만에 산 기타를 다시 내놓은 것은 성급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너의 이름은"이 처음 나왔을 때, 그걸 보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허전함을 느꼈다. 강렬한 자극은 그런 법이다. 느끼는 순간은 몹시 기분이 좋지만,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허전해지고, 그래서 새로운 자극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을 극장에 가서 두 번 더 봤고, 마침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예전 작품들도 봤다. 한 달간 여섯 번 정도 영화관을 들락거렸던 것 같다. 덩케르크도 집 앞의 아담한 영화관에서 한 번 보고, 이틀 뒤 아이맥스에 가서 한 번 더 봤다. 이런 패턴으로 영화를 보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나마 영화는 문화 생활이라서, 씁쓸한 뒤끝이 남지는 않는 것 같다. 보람찬 소비 중 하나랄까.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비슷하다. 살이 찌긴 하지만, 사진도 남고, 좋은 기분도 남고, 경험도 남고.


 "소비는 현대인의 미덕이다."라고 말하던 친구가 문득 떠오른다. 담배도 안 피우고, 술 먹는 것도 즐기지 않고, 게임은 슬슬 질리기도 하고 줄이려고 하고도 있고.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나는 언제부턴가 소비, 다소 불안하며 성급한 소비로 채우고 있는 것 같다. 허전함을 덜어낸다, 불안함을 불안한 행위로 떨쳐낸다, 두 개의 모순. 사는 게 그런 거지 하면서, 오늘도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을 머릿 속으로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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