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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ul 28. 2017

 영원함

 중학교 때 부터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나를 가로막은 사소하면서도 많은 핑계 중 하나는 기타에 대한 것이었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사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주기적으로 기타줄을 갈아줘야 해서."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누구를 웃기려고 지어낸 말도 아니고, 글감을 만드려고 지나치게 과장한 이야기도 아니다. 정말로, 주기적으로 줄을 갈아줘야 한다는 사실이 기타를 향해 뻗는 나의 손을 멈추게 만들고는 하는 요인이었다.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줄이 자꾸 녹슬어서 갈아 줘야 한다니. 그럼 주기적으로 줄을 사야되고, 그걸 풀어서 새 것을 갈아 끼워야 하고...

 클라우드에 올라 있는 자료, 온라인 게임의 기간제 아이템, 옛날 스트리밍 사이트의 DRM이 걸려있는 음악 파일, 그런 것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품고 있다. 막상 말을 하려니 저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를 말하기가 쉽지가 않다. 대충 느낌은 가지고 있는데. 음... 평생 가지고있을 수 없는 것? 영구적이지는 않더라도, 반영구적이지 않은 것,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것. 내 머릿속에만 있는 애매모호한 느낌을 간신히 끄집어 내 보았다.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 같다. 이 생각의 결론에 조금 많은 비약을 거치면, "영원함"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타줄은 영원하지 않다. 녹이 스니까. 클라우드에 올린 파일은, 하드에 저장되있을 뿐이고 만질 수 없는 데이터라는 존재에도 실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클라우드에 올라있는 데이터야 말로 "실체”가 없는 것이니까. 소장하고 있다는 개념이 모호한 것이 바로 클라우드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갑자기 서버가 맛이 간다면? 내 데이터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기간제 아이템은 말 할 것도 없다. 렌탈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가령 어떤 옷을 사고 싶은데, 렌탈밖에는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기간이 지나면 또 돈을 내고 빌려야 하는, 소유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DRM도 그렇다. 기간이 지나거나 기기가 바뀌면 들을 수가 없다. 파일을 가지고 있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서 "영원함"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낸 저 요소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어서 불안한 것", 그리고 "주기적으로 갱신해주거나 신경을 써 줘야 하는 것" 우습게도 이 두 개의 분류는 대립할 수 있는 요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 너무도 예민하고 걱정스러운 전자의 입장,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후자의 입장.

 그러니까 무언가가 영원하기를 바랄 때, 그것이 영원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고, 어디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애정, 그리고 내가 그것에 신경쓰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무심함. 각각이 무리하고, 게다가 서로 상충되는 극과 극인 두 개의 바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영원함은 그렇게 모순되는 만큼이나 이뤄지기 힘든 바람이고, 바라서는 안 되는 바람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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