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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ul 30. 2017

토익 시험날

생각들

1.

 방학때 평균 기상 시간은 9시 반. 하지만 오늘은 7시에 맞춰놓은 알람시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눈이 떠졌다. 억울해하며 한 시간을 더 잤다. 학기 중 내내 6시에 일어났어서 그런가, 조금 긴장하니 귀신같이 그 시간에 눈이 떠지는 것에 인체의 신비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고등학교 때 버스로 30분 거리인 학교를 가려고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머리를 디밀었던 3년간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시험이어서 - 전공 시험은 뭐라고 생각하는건지, 이 문장을 내 머릿 속에서 스크린으로 옮긴 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하자 - 고등학교때 했던 것처럼 아침밥을 챙겨먹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싶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내내 먹었던 어머니의 아침밥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면 한 새벽에, 졸리움에 눈이 먼 채로 더듬더듬 하던 학교 가는 준비 과정 중에는 아침 식사가 빠지던 날이 없었다. 욕지기가 절로 나오는 새벽 기상보다 더 이른 시간에 식사를 준비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기분이 찡해졌다. 아침식사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니 정말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나쁠 것 없지, 시험을 봐야 하는 순간에 매번 고등학생때의 나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때가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서 제일 머리가 잘 돌아갔던 시기 같아서.


2.

 시험은 연필로만 봐야 한단다. 샤프는 안되나? 답안지 마킹하기에는 너무 심이 얇아서 그런가? 다이소에 가서 연필을 샀다. 다섯개 들이 깎여있는 연필. 이번 시험으로 목표 점수를 달성하게 되면 다시는 안 쓸 연필인데, 연필깎이까지 사기 싫었기 때문에 깎여있는 것으로 샀다. 문득 왜 깎아서 파는 연필이 하나 뿐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유들 중 하나를 5분 뒤 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그새 부러져버린 심 하나. 액땜인가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시험 한시간 전인가 도착한 문자에는 연필 및 샤프 펜슬로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고 나왔다. 헛돈을 날린 셈이었다. 한 발 더 남아있었다. 마킹 수정을 위해 지우개를 꼭 지참하라는 문자 내용. 그렇다. 지우개를 안 샀다. 가는 내내 편의점을 뒤지고, 열려 있는 문방구가 있는지 확인했다. 편의점에서 지우개를 팔 리 없었고, 일요일 아침 여덟시 반에 문을 연 문방구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냥 답을 안 고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교문 앞에 파라솔이 있었고, 거기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팔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현금이 없었지만 계좌이체도 괜찮다고 해서, 오백원짜리 지우개에 천원짜리 레쓰비 한 캔을 샀다. 학교 자판기에서 오백원 하는 커피를 천원에 사다니!


3.

 중학교 교실, 시험장의 공기, 듣기 테스트 방송, 여러 가지 것들을 오랜만에 겪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시험 중이었으니까.

 LC를 하는데 정신이 사나웠다. 그냥 듣고 마킹만 하면 되는데, 계속 페이지 넘기는 사각사각 소리, 연필을 끄적이는 치직치직 소리. LC 빈 틈에 RC를 푸는건가? 문득 고등학교 모의고사가 생각났다. 듣기평가를 하는데 자꾸 뒤로 넘어가서 문제를 푸는 친구들이 그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난 되도록이면 순서대로 푸는 편이다. 문제를 풀 때도, 지문을 전부 읽고 나서 문제를 읽는다. 괜히 왔다갔다 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지금 푸는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문제 푸는 스타일도 생각이 많은 나에게 맞춰 적응하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 신기했다.

 시험은 시간에 딱 맞춰 끝냈다. 보통 모의시험을 볼 때는 10분정도 남곤 했는데, 항상 채점을 할 때면 막판에 비가 우수수 내리곤 했어서,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더니 시간이 안 남게 되었다. 시간이 모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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