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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ug 04. 2017

동네 카페가 되고 싶어

 어쩌다 눌러 본 연락처 어플에, 인간관계를 넓게 챙기며 살아오지는 않은 반증으로 220개 정도의 연락처가 있었다. 가족을 빼면 한 190개 정도 되려나. 과연 이 190명 중 나와 실질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든다. “실질적으로 연락한다”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별 일이 없다면 당장 내일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개인적인 “실질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의 기준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내 연락처에서 나와 실질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왜 이렇게 의미있는 연락처의 갯수가 적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내가 잘못해서 잃은 사람들도 있고, 그냥 별 일 없이 사는 곳이 바뀌거나 해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안 하게 된 사람들도 있고, 그런 것 같다. 살아오면서 몇 번이고 바뀐 삶의 무대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복학까지. 수 차례의 이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그 와중 그나마 가깝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주소록에 남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과 전화번호라는 자국. 그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스쳐 지나갔는지는 그 자국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간 방향으로 따라가서 연락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굳이 그러지 않기 때문에 의미없는 두 개인을 잇는 흔적으로 존재할 뿐.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자국만이 가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곁에 머물러있는 사람도 있다. 마치 번화가 지하철역 출구 근처의 3층짜리 큰 카페처럼, 피크 타임이 되면 자리가 꽉 차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금요일 6시같은 만남의 시간이 되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가는 사람으로 근처가 북적이는 그런 카페. 인적 드문 골목의 테이블 세 개 짜리 카페같은 나는 그런 북적이는 카페를 동경한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 두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스스로가 호불호를 타지 않는 프랜차이즈 카페처럼은 못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모두의 입맛에 맞는 커피,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 항상 살가운 직원들. 그런 것들을 못 갖추고 있는, 취향을 타는 커피,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좁은 인테리어와 적은 테이블,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은 바리스타. 그게 나의 스타일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다.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정도 떨어진 카페가 있다. 20분정도 걸어가야 하고, 두 세번은 골목 모서리를 돌아야 겨우 보이는 카페. 자주 가지는 못하는 편이다. 20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도 아니고, 게다가 집 앞 3분거리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 3분 거리의 그 프랜차이즈 카페는 집과 아주 가깝기 때문에 커피가 생각나는 날이나 집에 별로 있고싶지 않은 날에, 별 생각없이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앉아있곤 하는 그런 곳이다. 위에서 묘사했던 그런 전형적인 목 좋은 곳의 프랜차이즈 카페인 셈이다. 하지만, 요새 같이 밖에 나다니기 힘든 날씨에, 나는 가끔씩 3분 거리의 카페를 뒤로한 채 굳이 20분이 걸리는 카페를 찾아간다. 왜냐하면, 거기는 원두가 내 입맛에 잘 맞고, 디저트들도 독특해서 진열장 너머에 선 나를 궁금하게 하고, 인테리어도 내 취향에 맞고, 틀어주는 음악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20분 떨어진 카페에서의 시간은 똑같은 일분 일초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카페에 가는 길에는 어떤 메뉴를 시도해볼지 고민한다. 잉글리시 스콘? 얼 그레이 케익? 아니면 위스키를 넣은 아이리시 커피? 그렇게 도착한 카페에서 오늘 먹기로 한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오고, 사진을 한 장 찍고,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다가, 오늘의 선곡도 내 플레이리스트랑 비슷하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매력이 있기 때문에 20분이나 걸리지만 굳이 찾아가는 것이다. 그냥, 세상 모두가 목 좋은 곳의 문전성시인 프랜차이즈 카페는 될 수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20분이라는 거리를 이겨내고 굳이 찾아가고 싶은, 그런 매력이 있는 카페는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후자도 전자에 못지않게 멋질 수 있다는것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서, 긴 이야기를 해 보았다. 설득력이 있다면 좋을텐데. 난 3분거리의 프랜차이즈 카페는 되기 힘들다는걸 알기에, 20분 떨어졌지만 가끔씩은 굳이 들리고 싶어하는 그런 카페가 되려고 노력할 셈이다. 누구나 쉽게 와서 머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못 되더라도,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찾아오는 그런 동네 골목의 카페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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