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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ug 09. 2017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동네에 새로 생긴 돈까스집에 갔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하는데, 벽에 붙은 장식의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Do more of what makes you happy." 음식점에 저런 걸 붙여놓다니,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만큼 나가라는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지인들과의 행복에 대한 성토는 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삶."으로 귀결되곤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리고 그런 먹고 살 걱정 없는 삶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며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온 결론이리라. 하고 싶은 것이란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창작물 중 모두의 마음 속에 남을만한 것나라도 나오는 것, 그것은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 일을 해낸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마치 구름 너머에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가 있어서, 엄청난 열풍을 뿜어 대는 것 같은 요즘의 날씨.  이럴 때 야외를 돌아다니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등에 땀이 맺히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정류장으로 가는 3분 동안, 내리쬐는 직사광선에 머리가 다 벗겨질 지경이다. 하지만 모처럼 본가에 내려왔기에, 집에만 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부모님과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일을 보러 가시면 도와드리고, 그러다 보니 항상 밖에만 있는 일상의 연속을 보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취방에서의 피서를 만끽하느라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본가에 와서는 하루 종일 움직이는 하루하루를 일주일 연속, 그것도 찜통 더위 속에서 보내니 체력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어느 날, 산책을 다녀오고 8시 쯤 되었을까,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나를 짓누르는 피로의 무게감은 중간고사 기간 3일 연속 밤을 샌 것 만큼이나 육중했다. 그냥 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찼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두세 편의 글을 다듬어야 했고, 재택 아르바이트를 위해 보낼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침대에 잠시 등을 붙였다. 그 길로 나의 하루가 끝이 났다. 글도 다듬지 못하고, 사진도 찍지 못한 채.


 행복은 다양하다. 가까이 있는 것이 있고 멀리 있는 것이 있다. 낮은 층위의 것이 있고 높은 층위의 것이 있다. 하루하루 잠을 자는 것은 멀리 있는 행복, 또는 높은 층위의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루의 사소한 욕구일 뿐이다. 계속 쌓이다 보면 엄청나게 커져서 삶에 지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잠을 줄인다고 해서 크게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잠을 참고 글을 쓰면 당장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렇게 글 하나를 완성하는 성취감, 그리고 완성한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 그런 감정들은, 약간 멀리에 있고, 또 더 높은 곳에 있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은 무언가 의미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런 것을 할 때 난 정말로 행복하다. 어제의 피곤한 나는 잠에 빠져듦으로서 당장의 피곤함을 떨쳐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난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더 중요한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큰 행복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의 행복을 잠시 외면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더 많이 하라."라는 문장이, "하고 싶은것을 다 하면서 편하게 살아라." 라는 말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하루의 끝을 앞당긴 잠, 그리고 그 통에 쓰지 못한 두 편의 글과 일거리, 그리고 추가로 다음날 설쳐버린 새벽잠, 그런 것들을 댓가로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역시 피곤했던 몇시간 전, 커피를 잔뜩 내리고, 그것을 들이키며 이 글을 기어코 끝내고 자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끝이 났다.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조금은 더 많이 한 하루를 보냈다. 한 번에 행복해질 만큼 내가 원하는 행복이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다만 그 행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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