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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Sep 19. 2017

좌우명이 인생을 얼마나 좌우할까

 브런치를 하기 전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했었다. 그 블로그의 역사는 참으로 길었다. 중간에 한 번 아이디를 바꿨는데, 맨 처음 시작을 따지려다 보면 1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가 중학생 교복을 입은 나를 마주해야 한다. 중2병의 증상이 가장 커다란 시기 중학생 2학년. 중2중2한 기운이 블로그 전체에 넘쳐 흘렀으리라. 검정과 흰색의 투톤 배경 - 쿠앤크라는 말을 썼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당시 하던 게임인 마비노기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 으로 레이아웃을 직접 만들어 넣었다. 블로그의 제목은 "Always Climax"였다. 왜 그런 제목을 했는지는 똑똑히 기억난다. 그런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도권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 바뀐 적 없는 머리 스타일, 남들은 한창 멋을 낼 시기인데 교복도 줄이지 않고,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비율이 1:4정도 되었기에 - 그래도 연애할 녀석들은 다 연애했으니 핑계지만 - 연애도 못 하고, 그런 삶이 너무 재미없어서, 좀 역동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제목을 그런 것으로 했다.

 만약 그 블로그의 제목이 내 삶에 정말 영향을 끼친 거라면, 그래서 내 삶이 지금 이렇게 요동치고 있는 거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과거의 중학생 2학년인 나를 한 대 때리고 싶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정말 재미없던 삶이, 그 뒤로는 풍파가 가득했으니까. 그 풍파는 심지어 현재진행형이기까지 하다. 그 고난의 종류들은 여러가지 글에 살뜰하게 나눠 적었으니 따로 설명하지는 않는 것으로 하자. 삶이 워낙 고달프니 그런가, 왜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지, 마치 트래비스의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라는 곡에서, 왜 내 위에만 비가 내리지, 내가 17살때 거짓말한 것 때문인가, 라고 생각했던 것 처럼, 나의 어떤 잘못된 행동이 이런 고난으로 나를 몰아넣었는지 원인을 찾게 하고, 이과대학 화학과에 재학 중인 과학도 주제에, 참으로 미신적인 생각에까지 머물게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 쓸 글의 주제는 좌우명의 힘에 대한 것이다. 내 좌우명은 무엇이었나 생각하다 보니, 자질구레한 서론이 길어졌다. 심지어 제목도 갑자기 생각나서 적었다. 긴 제목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뭔가 말이 되면서도 아재스러운 점이 마음에 든다.


 사족이 잔뜩 달린 서론에서 이어가자면,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좌우명을 설정하면 인생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구리디 구린 "Always Climax"라는 것도 생각나게 된 것이다. 좋은 좌우명이라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인생을 지속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다. 마치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가 했던 "우리가 지고 있을때 우릴 응원하지 않을 거라면, 우리가 이기고 있을 때도 응원하지 마라." 같은 느낌으로.

 그래서 고심 끝에 - 라기에는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 생각해낸 문장은 "그럼에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였다. 친구에게 이 문장을 처음으로 들려주었을 때,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되돌려 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나쁠 때만 쓰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라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쓸 수 있다고. 마치, 어떤 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탔고, 잔뜩 취한 기분 가운데서 쓸 수 있는 문장이 바로 "그럼에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니까. 그래서 약간은 단단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문장을 나의 좌우명으로 삼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문장은 꽤 효과가 있었다. 몇 주 정도는. 정말 힘든 순간에는 잘 생각나지 않는 문장인 것 같다. 이렇게 곱씹을 때는 생각이 나서, 마지못해 내일을 준비하게 하는 힘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가족과의 사이가 썩 괜찮아졌다. 이것도 몇 편의 글에 파편처럼 남겨놓은 정보인데, 난 사실 가족과의 사이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서울로 온 거기도 하고, 집에 가는 것이 썩 달갑지도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걸 가감없이 표현하곤 했는데, 나만큼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근 몇달 사이에 가족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졌다. 상처 치유의 가장 큰 원동력은 나 자신의 힘듦이 아닐까 싶다. 가족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존재니까. 갓 스무살 때는 가족같은 친구가 있을 줄 알았다. 스물 세넷 쯤에는 그런 친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친구들을 모조리 잃었다. 꽤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빨리 가족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서로 노력한 결과, 가족 간의 사이는 꽤 좋아졌다. 연락도 자주 하고, 집에도 더 자주 간다. 그래서 삶의 원동력을 얻었다. 죽으면 안 되는 이유, 대충 살면 안 되는 이유, 열심히 사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 존재, 그것을 가족에게서 찾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교류가 많이 늘었는데, 저번 주에는 아버지께서 서울 본사에서 하는 회사 교육을 참석하게 되셔서 - 아버지는 근속 년수가 26년이 넘어가신다. 교육 같은건 안 가도 되시는 입장이다 -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 처음 온 해로부터 벌써 7년차가 되어 가는데, 남산타워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 남산타워를 제2롯데타워 전망대에서 보았다. 친구들과는 갈 일이 없는 아쿠아리움도 괜히 갔다. 가족끼리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본질이 정말 슬픈 사람이라서일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문득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다. "모두의 시간은 유한하며 직진하기만 한다."라는 문장. 아버지의 시간도 유한하고, 어머니의 시간도 유한하고, 나의 시간도 유한하고, 내 동생의 시간 역시 유한하다. 그리고 그 유한하며 비가역적인 시간이 겹치는 순간은 참으로 드물 수 밖에 없다. 그동안 가족을 멀리하느라 낭비해버린 겹쳐진 시간들이 후회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겹친 시간은 얼마일까? 괜히 눈물이 나서, 앞으로는 절대 서로 겹쳐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생각이지만, 그 생각을 한 것이 앞으로 남은 우리 가족의 나날들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그 생각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나의 좌우명은 "모두의 시간은 유한하며 직진하기만 한다."이다. 적어도 인위적으로 정한 "그럼에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보다는 내 머릿 속에 콱 박혀있는 느낌이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라 좋다. 고상한 버전의 "YOLO"랄까. 고작 한 두 문장이 인생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 속에 어떤 한 문장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 문장은 적어도 인생의 어느 부분에는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모이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좌우명은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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