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밀 Oct 09. 2017

추석 고양이

 시골 섬마을 창고에 가져온 짐들을 풀어놓으니 왠 고양이 두 마리가 사이사이 똬리를 틀었다. 도둑고양이 치곤 대범하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어쩌다 기르게 된 길고양이 두 마리라고 한다. 어째 창고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것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창고에 꼬이는 쥐 잡으라고 갖다놨다, 다소 쿨하면서 무심한 명목으로 고양이를 들였다고 말씀하신 거친 섬사람인 작은아버지는 표면상의 이유와는 다르게 고양이들에게 꽤 정성을 들이고 계신 듯 했다. 뒤늦게 발견한 창고 한 편의 고양이용 사료와 물이 담긴 그릇, 고양이용 낚시대 장난감에, 식사 때마다 고양이가 밥상 위를 기웃거려도 크게 화내지 않으신다거나.


 고양이가 낯을 가린다니,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느니, 정이 없느니 하는 말이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깜이 - 검은 녀석 - 는 두 시간 만엔가 내 무릎을 차지했다. 발톱을 살짝 세우고는, 사정없이 내 다리를 꾹꾹 눌러대면서 가르릉댔다. 그리고 머리로는 내 손을 핥고 깨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기분 좋은 상태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무드에 맞춰서 가르릉대는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내 손가락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하루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이틀째부터는 고양이 사진이 별로 없다. 창고에 앉기만 하면 내 무릎으로 튀어올라와 가르릉대는 깜이 때문이었다.

 여름이 - 삼색 고양이 - 는 흔히들 생각하는 전형적인 고양이였다. 친해진 뒤로도 쭈뼛대고, 깜이가 내 무릎 위에서 한참을 가르릉대다 지쳐 잠에 빠질 때까지, 여름이는 창고 한 쪽에서 혼자 서 있을 뿐이었다. 붙임성이 좋은 깜이가 좋았지만, 쭈뼛대는 여름이에게 괜히 관심이 더 가는 마음을 보고, 사람의 마음이란건 참 이상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가끔은 들이대는 깜이를 뒤로한 채 창고 구석의 여름이에게 조심히 다가가, 휙 집어들어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곤 했다. 그러면 그제서야 녀석은 아주 조용히 가르릉대곤 했다. 도도한 녀석.

 처음엔 그냥 옆 벤치에서 폴짝 뛰어 내 무릎에 올라와 조용히 재롱을 부릴 뿐이던 녀석들은, 이튿날이 되자 내가 뭘 하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서부터 총총 뛰어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왔다.


 깜이와 여름이, 두 아기고양이는 단순히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다른 듯 했다. 장난감을 줘도 여름이는 툭툭 건드리기만 했다. 흥미 자체를 보이는 경우도 적었다. 깜이는 달랐다. 항상 발톱을 콱 세워, 장난감을 낚아채서 만신창이로 만들곤 했다. 개는 살갑고 고양이는 도도하고, 그런 것들은 결국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도한 개도 있고, 살가운 고양이도 있고, 마치 사람이 저마다의 성격이 다르듯, 그런 게 아닐까.


 다만 확실하게 느낀 것은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일상이 있다는 것이다. 개는 주인이 집을 나가면 하루종일 그 주인만을 기다린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며칠이고 주인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주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물건을 잔뜩 물어뜯어 버린다는데, 고양이는 그런 걱정을 덜 해도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고양이의 일상에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순간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고양이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과 사람이 고양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겹치게 되면, 사람은 야속함을 느끼게 되고, 고양이는 도도하구나, 정이 없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연휴 내내 고양이를 관찰하며 한 생각이다.


 섬마을에서 배를 타고 땅끝마을로 나와 날 집으로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둬서 만질 수 없는 고양이들이 그리워졌다. 며칠간의 고양이들이 담긴 사진첩을 넘겨보기만 할 뿐. 텅 비어있는 무릎이 괜히 허전해졌다. 고양이가 필요한 순간, 하지만 고양이가 없는 순간.

매거진의 이전글 좌우명이 인생을 얼마나 좌우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