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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Nov 03. 2017

나는 섬이다

 섬이 있다. 사람이 드나들기조차 힘들게 빽빽한 숲이 둘러쳐 있는. 놓여있는 다리 하나 없고, 배도 드나든지 오래된. 외부와의 교류라고는 가끔씩 유리병 속에 뭔가를 적어, 그것을 담아 물에 띄우는 정도일 뿐인. 외로움으로 무장한 섬. 외로움을 걷어내는 수단은 누군가와의 교류인데, 둘러친 외로움이 누군가와의 교류를 막아서, 그 외로움이 점점 짙어져만 가는 섬.


 요새 내 이야기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샀던 것들의 리스트를 읊어본다. 블루투스 건반, 아이패드, 아이맥 컴퓨터, 기타 앰프, 텔레캐스터, 앰프를 마이킹할 마이크. 집에서는 그 어떤 효율적인 행동 - 전공 공부나 취직 준비 - 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요 근래 내가 산 모든 것들은 나의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하고, 덕분에 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의 연속을 보내게 되었다. 다른 섬으로 이어질 다리를 놓거나, 섬 밖으로 나갈 배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여유를 나는 섬 안을 안락하게 하는데에 할애했다.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사소했다. 긴 연휴 기간동안 시골 섬에 있었는데, 면도기를 가져가지 않았다. 시골에 있는 면도기들은 출처가 의심스러워서 쓰기 그랬다. 게다가 어차피 명절 내내 볼 사람들은 가족들이랑 고양이 두 마리 뿐이었으니까. 적어도 고양이들은 사람이 꾀죄죄하다는 이유로 피하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집에 돌아왔는데,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씻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기에 면도까지 하기는 너무 귀찮았다. 기침이 너무 심해서 마스크를 쓰게 되었는데, 그게 얼굴을 가려줘서 그냥 면도를 하지 않고 다녔다. 감기가 낫고, 마스크를 벗었는데, 몇몇 친구들이 수염을 기른 것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기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가까운 지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슨 일 있냐는 이야기도 한 번 들었고, 사는게 힘드냐는 이야기도 한 번 들었다. 내 귀에 닿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갈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근데 그게 별로 싫지도 두렵지도 않다. 무슨 일이 있어 보였으면 좋겠고, 괜찮지 않아 보였으면 좋겠다. 왜냐면 내가 실제로 그러니까. 내가 굳이 표현하려 하지 않아도 내가 괜찮지 않다는걸 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잘 어울린다는 말에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기르는 것도 맞는 말이다. 발 디딜 틈 없는 빽빽한 숲 울타리에 가시덩굴을 덧댄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를 가장 많이 잃은 올해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관계는 유한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올해 그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관계에 힘을 많이 쏟는 편이다.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을 베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유지해온 많은 관계들이 마른 나무껍질처럼 힘없이 바스라지는것을 지난 겨울에 목도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조금 신물난다. 그렇게 끝이 뻔히 보이는 사람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엄청나게 방어적이게 되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면 빠르게 마음을 거둔다. 마음을 적당히 주는 것은 아무리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까 더 뿌리를 내리기 전에 빨리 뽑아내야 한다. 그렇게 많은 친구를 잃었고,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 새로운 인연에게도 힘을 쏟지 않게 되는 현실에 처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섬이다. 인적 드문 섬.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밖에서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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