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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Nov 06. 2017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점보 바디 기타를 사게 한 말

 큰 손은 기타 연주를 한 결 쉽게 만들어준다. 피아노만큼은 아니지만, 기타 넥을 휘감고도 남는 손가락은 기타 연주를 편하게 해준다. 나는 손이 많이 작은 편이다. 체격에 비해서 작은 편일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꽤 작은 편이다. 작은 손 때문에 기본적인 연주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입문 단계에서 많이 고생했다. 때문에 기타를 포기한 적이 당장 생각해도 세 번은 된다. 고등학교 때 한 번,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한 번, 2학년 때 한 번. 고등학교 때는 대부분의 기타 입문자들을 좌절시키는 F코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옥의 F코드 고개를 넘긴 대학생 이후에도, 수많은 바레 코드들과, 6번, 5번, 1번과 2번 줄을 뮤트 해야 하는 수많은 기괴한 코드들은 나를 기타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F코드. 검지로 첫 여섯 줄을 모두 눌러야 한다...

 그렇게 멀어져만 가던 기타와의 인연은 정말로 할 것 없는 군대에 가서야 닿게 되었다. 집에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자유시간이 늘어갔고, 비는 시간에 습관처럼 기타를 쥐게 되니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물론 단순히 노력으로 해결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기타줄의 높낮이를 바꾼다거나, 더 얇은 줄을 쓴다거나 하는, 연주를 쉽게 해주는 방법들이 있는데, 기타의 줄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아주 얇은 줄을 써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연주가 가능한 정도로 만들었다. 그런 과정 끝에야 나는 기타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왜 굳이 힘들게 큰 기타를 가지고 낑낑댔을까. 진작 손에 맞는 기타를 찾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전역 후에 작은 손으로도 잘 연주할 수 있는 기타를 찾아 나섰다.


에드 시런의 기타, 리틀 마틴

 한동안은 일렉 기타를 쳤다. 전기 신호를 증폭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큰 장력이 필요 없는 일렉 기타와는 다르게, 단순히 줄과 통의 울림만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 통기타는 꽤 부담스러운 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기타인 카지노를 샀다. 일렉 기타이면서도, 속이 텅 비어 있어서 통기타와 비슷한 따뜻한 소리를 내 주는 기타. 하지만 어느 정도 연주하다 보니 한계가 찾아왔다. 진짜 통기타만이 통기타의 소리를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쉽게 연주할 수 있는 통기타를 찾아 나섰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게 된 것이 에드 시런의 기타, "리틀 마틴"이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별로 크지 않아 보이는 기타. 리틀 마틴이 내게 가장 어필한 점은 "작은 크기"였다. 기타 바디가 작으니, 넥도 자연스럽게 작아졌고, 그래서 작은 손으로 치기 아주 편했다. 큰 기타로는 손가락조차 닿기 힘들던 곡들이 리틀 마틴과 함께하니 쉽게 연주가 가능했다. 반년 동안 리틀 마틴은 내 기타였다. 진작 이렇게 작은 기타를 찾아 쓸 걸 왜 그동안 미련하게 매달렸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임스 베이가 라이브때 사용하곤 하는 에피폰 EJ-200CE

 그렇게 인생 기타를 찾은 듯했던 나의 안주는 최근에 깨어졌다. 큰 기타가 갖고 싶다는 생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리틀 마틴이 치기 쉽기는 했는데, 내게는 너무 작았다. 에드 시런의 프로필상 키는 173cm이다. 그리고 사진으로 본 리틀 마틴은 에드 시런에게도 작아 보인다. 그런 마당에, 꽤 큰 덩치인 내게 리틀 마틴은 더더욱 작았다. 공연 때 우쿨렐레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친구가 선물하다시피 내게 넘긴 텔레캐스터를 연주하다 보니, 정상적인 크기의 넥이 오히려 연주하기 편하기 쉬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은 넥이 손에 착 감겨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좁은 간격에 손가락을 많이 욱여넣어야 해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통 사이즈의 기타를 쳐 보니 그런 불편함이 사라졌다. 그래서 큰 통기타를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굳이 큰 통기타를 사야 한다면 에피폰의 EJ-200CE를 사고 싶었다. 일단은 디자인이 아주 예뻤고, 요새 자주 듣는 뮤지션인 제임스 베이가 라이브를 할 때 많이 사용하는 기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에드 시런때문에 리틀 마틴을 샀고, 후회는 없었다. 제임스 베이를 많이 들으니까, 제임스 베이가 쓰는 기타를 사면 역시 후회가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만약 기타를 사야 한다면 이 기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이 기타가 중고장터에 올라왔다. 가격도 꽤나 저렴하게. 본격적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이왕 살 기타라면 싸게 살 수 있을 때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기타는 보통 통기타보다 더 큰 점보 바디였다. 바디 사이즈가 일반 기타보다 크면 넥도 더 두꺼우려나, 만약 그렇다면 이 기타를 사도 제대로 연주조차 하지 못할 텐데,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마침 기타 줄을 사러 갈 참이었어서, 단골 기타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께 기타 모델명을 보여드리며, 손이 작으면 이런 기타는 연주하기에 넥이 많이 부담스러운지 물었다. 그리고 사장님의 대답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다.


"에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샀다

 기타라는 게 다 사람 신체를 고려해서 나온 것이다, 나도 손이 큰 편은 아니지만 다 연주할 수 있다, 이렇게 큰 사이즈의 기타도 써 봐야 나중에 좋은 기타들을 쓸 수 있다. 기타 가게 사장님은 이런 말들을 했다. 물론 단골 가게 사장님이고, 내게 잘 해 주시는 분이지만, 어쨌든 장사를 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새 기타를 팔기 위해 한 말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 그 말이 왠지 슬펐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걸까? 손이 작다는 이유, 힘들다는 이유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을 못 하는 것으로 단정 짓고 아예 피하는 길을 선택한 걸까? 그럼 난 제대로 기타를 치고 있는 게 아닌 걸까?

 요 몇 주 간, "남들 다 하는 것을 제대로 못 하고 사는 것"은 나의 주된 생각 중 하나였다. 왜 난 남들처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했다. 주로 대학교 생활에 대한 고민이었고, 결론은 안타깝게도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끄트머리에 와 버린 대학 생활이기에, 앞으로의 삶의 단계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기타 가게 아저씨의 "누구나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그냥 장사꾼의 멘트로 치부하지 않고, 내게 꼭 필요한 말처럼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다. 그 날 저녁에 중고거래로 에피폰의 점보 바디 기타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리틀 마틴, 그리고 텔레캐스터 기타의 넥보다는 많이 두꺼웠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물론 한 30분 연주하고 나니 손이 엄청나게 아파왔지만, 당연히 했어야 할 것을 미뤘기 때문에 아픈 것일 뿐, 못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은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몇 년 지난다고 끝나버리지 않는 것들이 내 인생에 너무나 많다. 기타 역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대충 해버렸다는 것을, 남들 다 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금 늦었지만 바로잡고 싶어 졌다.

 글을 쓰는 내내 오전 내내 연습했던 왼손 끝이 아파왔다. 적어도 리틀 마틴을 칠 때는 이렇게 손이 아프지 않았다. 기타를 제대로 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연습이, 어떤 일에 있어서든 거쳐야 할 과정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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