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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Nov 22. 2017

또 근황

1.

 "공공연한 일기"라는 탭에 쓰는 글의 제목에 근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만큼 새삼스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모든 글이 근황인 셈인데, 어느 글에만 근황을 전한다며 유난을 떠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은, 덜 사적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요새 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의 사소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거진 이름 그대로 "공공연한 일기"를 누구나 볼 수 있게 올린 이유는 이것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글의 재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의 일기라면 누구나에게 흥미를 이끌어낼 만한 장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생각의 나열을 보고 재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고, 나답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적나라한 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문득 어떤 지인이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별 의미 없이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정말로 별생각 없이 한 칭찬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나로 하여금 그 커멘터리에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여느 때처럼 다소 적나라한 글을 올리는데, 또 다른 지인이 내게 말했다. 이걸 관련된 당사자들이 보게 된다면 곤란해지지 않을까?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문제이다. 왜냐면, 내가 이런 플랫폼에 글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실제 지인은 한 손으로도 꼽을 정도였고, 그러니까 이 글과 내 일상을 연관 지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게 될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안일하게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은 덜 적나라하게 일상을 담아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고민하는 동안은 글을 안 쓰게 되었다. 이제는 되도록이면 스스로를 가리고 글을 쓰려고 한다. 글에 담긴 진솔함과 소소함이 날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감이 되었으면, 그런 생각으로 글을 써 나갈 생각이다.


2.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왜 이 계절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길이 조용해서. 옷을 얇게 입는 것보다는 껴입는 편이 좋아서. 겉옷은 며칠 정도는 같은걸 입어도 되니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까끌까끌하면서도 서늘한 이불 바깥의 감촉이 좋아서. 현관을 나섰을 때 한 번 입김을 내뿜고 길을 나설 수 있어서. 겨울옷에는 주머니가 많아서 온갖 것을 넣어 다닐 수 있어서. 눈을 좋아해서. 더위는 잘 타지만 추위는 잘 견뎌서. 쓸쓸한 기분이 밀려들어서. 쓸쓸해도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어서. 잔잔한 노래와 잘 어울려서.  

 

3.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로는 항상 친구가 많았다. 딱 두 학기 빼고. 처음 학교에 들어온 학기, 그리고 지금 다니는 학기. 두 학기. 인터넷에 흔한 그런 글들이 있다. 지금 마음을 쏟는 친구들은 대부분 몇 년 뒤면 연락조차 하지 않을 친구다. 나는 생각했다. 바보들, 그러니까 나처럼 친구를 잘 사귀었어야지. 오산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대학교 생활 동안 사귄 친구들과 대부분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항상 왁자지껄하던 주변이 조용하니 허전했다. 아니, 허전하다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항상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점심은 어디에 가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마치 채널 많은 IPTV 같던 점심시간은 이제는 "고독한 미식가"가 되고 말았다. 공강 때 할 것이 없으면 동아리방을 가거나 해서 얼굴을 맞대고 있을 친구가 항상 있었는데, 이제는 공강은 카페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이다. 꽤 신경 쓰이지만 나에게는 사람을 붙잡아둘 매력이 없는 건가, 그래서 다 떠나가버리는 걸까  하는 마음에 혼자 보내는 나를 방치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우주와는 달리 진공이 아니고, 결국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를 참지 못하고 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친해지기로 다짐한 것이다. 모든 것은 무한하지 않다. 심지어 삶마저도 무한하지 않지만, 하루를 꼬박꼬박 살아내고 있다. 끝이 있다는 이유로 뭔가를 시작하지 않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참 멍청하고, 계속 멍청한 짓을 반복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멍청하지 않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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