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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Nov 30. 2017

몇 개의 종종 들르는 가게들을 떠올리며


1.

 점심을 때우러 자주 들르기 시작한 국수집이 있다. 왜 그 집에 가기 시작한 걸까. 강의실에서 나선 지 3분 만에 그 식당 테이블에 앉을 수 있어서, 가격이 저렴한데 양은 푸짐해서, 맛은 또 나쁘지 않아서. 그런 이유들이 있긴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 집 사장님이 좋은 사람 같아서인 것 같다. 처음 방문하던 날, 점심을 거르고 들어간 수업이 늦게 끝난 날, 속은 허기진데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내게는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손바닥 같은 우산뿐이던 날. 항상 지나치던 그 증기를 뻐끔대던 국수집을 유독 그 날은 지나칠 수 없었다. 온몸을 쭈뼛쭈뼛 쑤셔야 할 낯선 감각을 대번에 물러나게 하는 푸근한 사장님의 인사말에 금세 마음이 편해졌다. 푸근한 인사말만큼이나 따끈한 국수가 세숫대야만 한 대접에 나왔는데, 7시쯤 약속이 있었기에 4시의 식사에 배를 꽉 채우기는 부담이 되었기에 깨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게를 청소하느라 왔다 갔다 하던 사장님은, 삼촌은 국수를 썩 안 좋아하나 봐? 말을 툭 던지셨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국수를 정말로 싫어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해를 풀고 싶었기 때문인지, 나는 몇 가지의 변명을 했고, 사장님은 아 그러면 그럴 수 있지, 하고 청소를 하던 손길을 이어가셨다. 괜히 마음이 쓰여 말을 한 마디 더 했다. 배고픈 날 꼭 올게요. 이 집 국수 진짜 맛있어요. 사장님은 웃으며 알겠다고 하셨다. 그 집이 단골집이 된 과정은 이러하다. 찾아갈 때마다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내줄 뿐 아니라, 따뜻한 인사말과 안부를 건네주시는 사장님이 있는 그 가게.

 

2.

 살아온 날을 대충 되짚어보면 네 곳 정도의 단골 미용실이 떠오른다. 그중 세 번째 단골 미용실은 지금 다니는 학교 후문에 있는, 직원들이 자주 바뀌던 미용실이었다. 안에는 1층의 더 비싼 미용실과 연결되는 원형계단이 있었기에, 수습 미용사들의 트레이닝 코스라는 것을 대놓고 어필하는 걸까, 짐작했다. 그런 꺼림칙함에도 계속 발길이 닿았던 이유는 가격이 서울의 대학가에서 최저가라 할 만큼 저렴했기 때문이다. 다른 가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불친절 때문이었다. 펌을 하고 한 달쯤 됐을 때, 머리를 살짝 다듬으려고 갔는데, 3분 만에 - 제지할 틈도 없이 - 펌한 머리를 전부 가지치기해버리고, 이제 시원해졌죠? 더 자르고 싶은 곳 있어요?라고 되묻던 미용사.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네 번째 단골 미용실은 본가 동네에 있다. 그곳을 단골 가게로 정한 이유는 아무 선생님이나 괜찮아요, 대답에 배정받은 남자 디자이너의 절도 있으면서도 섬세한 가위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디자이너의 절도 넘치면서도 섬세한 기술은 나로 하여금 세 번째 단골 미용실의 미용사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확 느끼게 했다. 그래서 굳이 머리를 하러 버스로 세 시간 반이 걸리는 먼 본가 동네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 그 가게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미용사가 말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학년이에요, 졸업하기 전에 꼭 여행 가봐요, 돈 모으는 재미가 생기면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 뭐 이런 이야기들에서 말하는 이의 인간미가 풍겨져 나오는 듯했다. 이제는 찾으시는 선생님 있으세요, 미용실 매니저의 물음에 그 남자 선생님이요, 하고 대답한다.


3.

 그 외에 자주 다니는 카페, 악기점, 호떡 가게, 떡볶이집, 그런 것들을 떠올려본다. 가게들이 모두 해당하는 공통점은 서비스의 질이 좋다는 것이다. 음식이나 음료가 맛있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질 좋은 서비스는 나의 발걸음을 한두 번 더하게는 해도, 계속 먼 거리를 찾아가거나 하게는 하지 않는다. 나를 몇 번 찾아갈 고객에서 단골손님으로 변신시키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건네는 몇 마디 말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안부 한 마디,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어필하는 한 마디, 딱 필요한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말 한마디. 그런 것들에 이끌려서, 그런 것들이 좋아서, 그런 것들이 주는 따뜻함이 그리워서, 나는 그런 가게들의 단골이 되고 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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