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마감이 늦어져서 저녁 열한 시쯤 집으로 걸어오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야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구나. 20년이 넘는 인생 동안, 나는 나를 고스란히 좋아한 적이 별로 없다. 외모든 성격이든, 아니면 내가 써 내려가는 인생의 이야기든. 지독한 자괴감은 항상 삶의 어느 부분에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는, 자기애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좋아할 기미를 찾을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지독히 싫어하던 나 스스로를, 조금은 좋아하게 된 전환점은 참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갑자기 떠나게 된 영국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의 나는,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여행 전의 삶의 모든 동력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여행 이후에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웠다. 기대되면서도 두려워하는 여행의 순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다가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네덜란드에 가는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그렇게 한 달간 여행에 뛰어들었다. 어느 날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어느 날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 호스텔에서, 처음 가 보는 세상을 뒹굴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현지인,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하기 싫은 학교 공부를 하며, 줄어들기만 하는 인맥을 보는 일상에 너무 오랜 시간 절여져 가는 동안, 나는 삶이 재미없다고 느꼈다. 그만둘 수 있다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평소 생활하던 곳과는 완전히 떨어진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받았다. 눈치 볼 것이 없어지니, 스타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염을 기르고, 머리는 런던의 미용실에서 영국 스타일로 완전히 쳐 올렸다.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하지 못했던 스타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으니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으면 여행 동안 머리를 길러서 한국에 돌아가면 되는 일이고, 어울리면 즐겁게 여행하면 되는 것이니까.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좋았다. 내 예전 사진을 보고는, 절대 이 스타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흔하지 않은 스타일을 하게 되어서 좋았고, 그 스타일이 내게 어울려서 좋았다. 나의 스타일을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
꿈만 같은 여행의 순간도 이제는 두 달이 넘게 지났다. 사실 그 후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있고, 졸업 논문을 아직도 붙들고 있다. 새로 시작한 연애는 역시 잘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고, 여전히 외로운 삶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나 자신을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하는 편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단순한 진리이다. 사랑받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나,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타인이 그런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나, 그 어떤 좋은 조건만큼이나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이나. 나도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못할 이유만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래서 팍팍한 일상도 견딜 수 있고, 실연의 아픔도 예전만큼 힘겹지는 않다. 나로 사는 것이 이젠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한 트럭인 세상이지만, 그래도 나로 사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잃게 되겠지만, 이 생각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히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른 어떤 것들을 잃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