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육 Apr 14. 2018

줄어드는 생각, 평화로운 삶

 매 순간 어떠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너는 생각이 많은 게 문제야.", "왜 굳이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항상 듣는 말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꿍꿍이를 달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아와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사는 것 뿐이었다. 애초에 타인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이 많아?"라는 물음을 듣기 전까지는, 이런 방식이 유별난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품은 생각의 양이 남들보다 과하게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스스로의 천성이 마음에 들어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없는 것보다는 생각이 많은 것이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전히 그것만큼은 틀린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듯, 생각을 적게 해야겠다고 따로 생각하지 않음에도 요새는 예전만큼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눈 앞에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을 제때 하지 못하면 잠깐 자책한다. 예전처럼 시름에 빠져 하루를 날리거나 하지 않고, 그냥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 생각한다. 그뿐이다. 살아가는 매 순간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이 한두 명 쯤 있었는데, 내 마음의 벽 한 곳에 항상 누군가의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 액자는 아무 사진도 없이 비어버린지 오래다. 누군가를 엄청나게 사랑하지도 않는다. 쉬는 날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을 외딴 곳으로 가게 하거나, 비상금을 털어서 바다를 건너게 할 사람이 지금 내 삶에 없다. 어쩌면 예전보다 생각이 많이 없어져서 그런 것 아닐까. 누군가를 생각하다 보면 더 생각이 미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면 좋은 감정이든 싫은 생각이든 생각이 더 커지게 되고,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 그런 과정이 이제는 없어서 내 마음 속 액자들이 비어버린 것 아닐까.

 우습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이 시기에, 애매한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많다. 내게 호감이 있지만, 그 쪽에서는 애매한 호감을 내비치고, 내가 다가가는 사이에 그 쪽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 다가올 테면 다가와 보라고 말하는 듯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 있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고, 다가가고, 상처받았다. 하루를 망치고, 인생의 어느 부분을 망쳤다. 한 사람이 내 하루를 망치게 두는 것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내 자신이 되어야지, 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항상 생각했지만, 스스로 휘둘리고 망치기만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되면서, 삶이 평화로워졌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가득해서, 당분간은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내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친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전성기가 언제였는지 물었을 때, 나는 자신감 있게 지금이라고 답했다. 스스로의 전성기라고 자부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친구가 적고, 생각도 적고, 누구를 사랑하지도 않는 시기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인생이 항상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이 평화가 오래 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달라진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