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밀 Jul 17. 2016

사랑 앞에서의 에너지 보존 법칙

제이레빗 - 선잠(나 그대의 사랑이 되리)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 버리면 평소에 힘이 없는 편이다. 항상 그 사람을 머릿속에 그려내느라 에너지를 다 소모해버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먹을 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음악을 들을 때 플레이리스트에 그 사람의 취향을 살짝 입힌다거나,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 의해 조금씩 점유되어 가는 나의 일상은, 끝내는 균형을 잃고 무기력해지곤 했다. 계속되는 누군가에 대한 감정 때문에 일어나는 일상의 균열은, 나로 하여금 만약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좋아하느라 낭비하는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투자해서, 지나온 삶이 지금보다는 건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하였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재로 이끌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삶, 사람이 아닌 어떤 것에 집중하는 삶은 훨씬 균형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그러한 삶은 일방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상대방의 호응이 중요하다. 사람이 아닌 것은 호응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특정한 취미에 빠져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보자.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 적성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취미가 사람을 피하지는 않는다. 얻어지는 것 역시 다르다. 사람 간의 관계는 흔히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준 마음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아할 수도 있다. 취미는 열중하고 싶은 만큼 열중해도 된다. 취미가 사람을 상대로 밀당을 하지는 않는다. 또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써 줘야 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는 다르게, 사물에게는 관심을 아예 끊더라도, 사물이 나에게 토라지는 일은 없다. 열심히 치던 기타를 한 달 정도 팽개쳤다가 다시 잡는다고 해서 그 기타가 서운해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일방적인,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인 것에 열중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조금 더 돌보게 된다. 계속 그것만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늘어나기에 지저분한 주변 청소도 자주 하고, 약간 무거워진 몸을 다듬으려고 운동도 더 하게 되는 등, 삶에 한층 균형이 잡히게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보내버렸을 저녁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쓰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나의 우주는 그 사람으로 가득해져 버린다

 그렇게 삶을 잔잔한 호수처럼 보내는 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온 나날들을 돌아보니, 역으로 그런 순간들이 주었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많은 시간들이 한 사람을 생각하느라 버려졌지만, 역으로 그 사람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낸 것 역시 꽤 많았다. 2년간 밴드 보컬을 하며, 악기를 배울 기회는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스스로 악기를 배우려 하지는 않았다. 귀찮은 것이 가장 컸고, 무대 위에서 노래에만 내 역량을 집중하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에서였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코드를 잡고 스트로크하는 것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나를 한 단계 끌어올려 준 한 사람이 있다. 아르페지오가 들어가는 기타곡들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개방현 코드나 잡고 아무렇게나 긁어대고, 악보는 쳐다보지도 않던 나와는 정 반대의 성향이었던 셈이다. 코드 반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르페지오는 질색을 하던 나는 어느새 모든 여유 시간을 타브 악보 앞에서 오른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줄을 치는 연습을 하는데 할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금요일에 만나요, 너 사용법, 스토커 같은 노래들을 독파해 나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제일 좋아했던 노래까지 연주하며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제이레빗 - 선잠 (나 그대의 사랑이 되리)

 그렇게 나는 기타에 지문이나 묻히던 사람에서, 어느 정도는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세션의 도움 없이는 MR이나 깔아놓고 노래나 부르는 신세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힘이 빠져버린 것 같은 인생이었지만, 결국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이루지 못했을 것을 해낸 것이다. 그렇게 소모된것만 같았던 인생의 에너지는 다른 것으로 바뀌어 보존되고 있었던 셈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함으로서 고통을 받지만, 그 사람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얻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시련을 감수할 만한 메리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나아가는 것 만큼 몹시 힘든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당분간은 누굴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오면 센치해지는 이유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