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밀 Apr 29. 2018

감당하기 힘든 사치를 부린 하루

  돌이켜보니, 오늘 하루는 대단한 사치를 부렸다.


 팍팍한 세상이라 그런지, 사치라는 단어는 굉장히 서민 밀착형 단어가 되고 말았다. 이를테면, 메로나를 사 먹을 수 있는데 브라보콘을 사 먹는 것, 와퍼 대신에 콰트로 치즈 와퍼를 먹는 것, 돈가스 대신 치즈돈가스를 먹는 것, 웹툰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200원을 결제해서 다음 만화를 미리 보는 것, 한번 본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한번 더 보러 가는 것, 벤치에 앉아 쉬다가 입이 허전해서 데자와를 하나 뽑아 마시는 것, 장을 볼 때 특란 대신에 대란을 사는 것. 그런 사소한 몇백 원, 몇천 원을 더 투자하고는, "아, 오늘은 좀 사 치부 린다." 장난스레 말하고는, 옅은 회의감 역시 살짝 들이킨다. 고작 몇백 원, 몇천 원이 가져다주는 복잡 미묘한 감정.


 그런 맥락에서 오늘은 엄청난 사치를 부린 셈이다. 오늘 무엇을 했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가서 사치를 부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냥 하루가 백지장이었다. 모자란 잠을 자고, 시험기간에 쉴 새 없이 돌던 머리를 멈추고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보냈다. 천 원 차이나는 치즈돈가스를 사 먹으며 사치라고 칭하고, 회의라고 느낀다. 천 원은 10분을 조금 덜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오늘 날려버린 것은 천 원도, 만 원도, 십만 원도 아닌 하루라는 시간이다. 하루라는 시간은 무슨 일을 해도 벌어올 수가 없다. 무슨 짓을 해서도 얻을 수 없는, 나에게 주어진 것을 그저 허공에 던져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감당하기 힘든 사치를 부리고 만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주 가는 국수집이 문을 닫는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