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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Dec 30. 2018

타인의 예술이 준 감상

나의 식어버린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

언젠가는 공연을 하고싶은 분위기의 소극장이었다

 누군가의 인생 첫 무대를 보았다. 의도보다 조금 과하게 움직여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몸짓이나, 긴장이 배인 듯한 목소리나,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물을 마시는 모습이나, 머릿속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듯한 멘트나, 긴장한 기색을 그는 여러모로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가 능숙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가수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중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데뷔하는 얼굴 없는 가수인 그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소극장의 객석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가득 찬 군중들을 그는 때로는 신기하다는 듯이, 때로는 감사하다는 듯이 바라보곤 했다. 그 순간 그가 노래를 듣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하였을 때, 그가 느낄 벅참을 상상해보니 마음속이 뜨거워진다. 첫 무대를 하는 그는 또한 직장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구직활동을 하면서도 음악을 했던 것이고, 취직을 하고 나서도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다. 구직이라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은 그의 열정에 경이를 느꼈고, 취직과 예술을 동시에 해내는 그의 현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브런치 "김희영" 작가님의 책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

 누군가의 책을 받아 보았다. 책상 위에 놓인 완성된 책 한 권이 주는 무게감.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완성해낸다는 것은 집필, 퇴고와의 싸움인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을 책에 모아 세상에 온전히 내보낸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러한 싸움의 과정 속에서, 그녀는 이 책의 퇴고만 붙들고 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책을 쓰는 것 외에도 많은 활동을 했다. 발 디딜 틈 없게 빼곡하고 숨 가쁜 일상이지만, 그녀는 책을 만드는 일을 놓지 않았고, 책 한 권을 세상에 만들어내는 일을 마쳤다. 책의 뒤표지 안쪽에는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이라는 타이틀 아래 백 명쯤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자신의 작업물이 세상에 나오기를 염원하는 그 당사자가 되었을 때 감정을 상상해 본다. 벅찰 것이다. 하지만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염원만이 책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누군가 썼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녀는 빼곡한 일상 속에서 책을 쓰면서, 끊임없이 많은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것들을 모아 세상에 책 한 권을 내어놓은 것이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책상 오른편에는 밀크티색 텔레캐스터가 놓여있다.

 주말 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예술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예술에 한 획을 긋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일상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같았다. 예술과 일상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빼곡한 일상 어딘가에 예술의 순간을 끼워 넣어야 하는 고단함, 그리고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바쁜 일상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예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쁜 현실 때문에 예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열정이 부족하다면 일상이 텅 빈 공간이어도 그 위에 예술을 위한 시간을 올려놓지는 않을 것 같다. 가령 자기반성을 위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렇다. 예술은 결국 열정의 문제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의 문제이다.

 예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개인적인 이유는 그것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유니크한 감정, 나다운 글, 나다운 노래, 그런 평가들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를 더 좋아하게 된다. 나의 글을 좋아해 주거나, 나의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로서 살아가는 보람을 확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한때는 음악에만 몰두한 적도 있고, 글을 쓰는데만 몰두한 적도 있다. 그런 집중은 어떠한 형태로든 삶에 지장을 주었고, 그런 지장들은 일상을 약간, 혹은 크게 망가지게 했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느라 몰두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 하반기는 해야 할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졸업 논문을 마치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이를 악물고 논문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면 쪽잠을 자고 다시 논문 앞에 앉았다. 그렇게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자연히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예술이 내 삶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그것이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끝났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을 잘 살아가면서, 자신의 예술을 꾸준히 하는 사람을 이번 주말 동안 두 명이나 보았다. 결국 문제는 열정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술을 응원하는 한편, 나의 예술 역시 아직은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열정, 끈기, 그리고 해야 할 일은 끝내는 책임감, 이것들을 잘 간직하면 어쩌면 나도 예술을 계속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하루였다.

 

- 공연을 보며 이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책을 받았을 때 머릿속 내용의 크기가 커졌다. 글을 적는 내내 몇 번이고 딴짓을 했지만, 꼭 완성시키고 자야 할 것 같아서 잠을 미뤘다. 내년에는 뜸했던 글도 더 많이 쓰고, 스스로의 음악도 더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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