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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an 21. 2019

열아홉에 쓴 일기를 읽었다

 정확히는 열아홉 끝자락에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딱히 독대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 이유는, 최근 끄적거리기 시작한 티스토리 블로그의 조회수가 잘 오르지 않아서, 가지고 있는 네이버 계정의 블로그를 들어가 본 것 때문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던 열아홉살에 하루에 몇 줄씩 끄적거린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인상을 찌푸리고 인터넷 창을 꺼버렸을 테지만, 할 수 있으면 해 버리자는 생각이 큰 요즈음이라 그런지 호기롭게 글을 클릭해보았다.

 글은 그것을 쓰는 순간의 사람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되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문득 앞 페이지를 넘겨 두 달 전에 쓴 일기에 미처 기억하지 않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아홉에 쓴 일기에는 열아홉의 내가 담겨 있었다. 두 달 전의 내가 낯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열아홉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매사 진지한지, 왜 읽는 사람 입장에서 알쏭달쏭한 단어나 문장들을 적어 놓은 건지,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기 버거운 문체로, 열아홉에 했던 고민들이 적혀 있었다. 수능에 대한 이야기,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 결말을 아는 내용들에 대한 고민을 읽으니 우스웠다. 깊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스웠다. 물론 개중에는 잘 풀리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더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달라지고, 그렇게 계속 달라지다 보면 1년 간격을 둔 두 명의 나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달라진 나의 머리로 1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해도, 정확한 1년 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기에는 1년 전의 내가 담겨있다. 과거의 나를 보면,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과거에 했던 어떤 행동이 아쉬운지, 미래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아쉽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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