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육 Jun 15. 2019

기타 셋업을 받으러 간 날

 기타 셋업을 받으러 간 곳은 작년에 처음으로 들렀던 가게였다. 픽업 셀렉터가 접촉 불량처럼 이상하게 작동해서 찾아갔는데, 가게의 엔지니어님은 기타를 몇 번 쳐 보더니, 이건 이 부품의 고질적인 불량이라고, 그냥 자주 쳐 주면 해결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큰맘 먹고 기타를 짊어지고 찾아간 발걸음인데, 수리는 안 해주고 그냥 쓰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답변을 들으니 '혹시 수리해주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몇 초 스쳤다. 그런데 실제로 그 문제는 기타를 자주 쳐 주니 해결되었다. 생각해보면, 사기를 칠 심산이었다면 이상 없는 부품을 억지로 갈고 부품값을 청구했을 것이다. 기타를 들고 지하철까지 타고 갔는데 수리를 받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소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믿을 만한 가게가 하나 생겼으니까.

 반년에 한 번씩은 기타 셋업을 받아야지 다짐했던 것이, 일상이 바빠져서 차일피일 미뤄지던 것이 쌓여 세 달쯤 지났을 때, 기타 가게 근처에서 약속이 잡혔고, 오늘이 드디어 기타 관리를 받을 날이구나, 생각하며 기타를 들고 두세 시간 전 약속 장소 근처 그 기타 샵으로 향했다.

 기타를 맡겨놓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엔지니어님이 "기타 가방에서 꺼내 주세요."라고 말씀하셨고, 갑자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타 줄은 어떤 걸로 하실 건가요?", "따로 고장이 있는 부분이 있나요?" 같은 엔지니어님의 질문이 작업 초반에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셋업 과정을 옆에서 보게 되었다.

 스크래치가 나지 않게 책상 위에 덮인 카펫, 그리고 기타 넥을 고정하는 지지대, 앞쪽 벽의 타공판에는 온갖 공구들이 걸려 있고, 그 사이에 내 기타가 놓여 있는, 괜히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광경을 옆에서 보게 되었다. 집에서 하는 기타 관리라는 것은 녹슨 줄을 잘라내고, 건조해진 지판에 레몬 오일을 발라 주고, 넥이 좀 틀어진 것 같으면 트러스로드를 돌려주고, 새 줄을 끼워주고, 이 정도가 전부였는데, 전문가의 셋업은 훨씬 복잡했다. 트러스로드를 조이고, 풀고, 줄 높이를 재고, 브릿지를 조절하고, 기타를 저항계에 꽂아보고, 픽업 높이까지 조절하고, 녹슨 줄을 자르고, 내 것보다 훨씬 때깔이 좋아보이는 레몬오일을 - 엔지니어님 말씀에 의하면 이게 깁슨 공장에서 쓰는 것과 같은 거란다 - 넥에 도포해주고, 새 줄을 끼우고, 다시 전의 과정을 반복하고,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장인의 작업 같은 광경을 옆에서 보니, 묘한 쾌감이 들었다. 마치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우디를 수리하는 장면을 보고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You can't rush art

 셋업이 끝난 기타를 건네주고 나서, 엔지니어님은 기타 넥이 레몬 오일을 쭉쭉 빨아들인다고, 방이 많이 건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까는 번들번들하던 기타 넥의 광택이 한결 덜했다. 엔지니어님은 습도계를 하나 사서 벽에 걸어두고, 습도를 40%에서 50% 사이로 유지하면 기타 관리에 좋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관리해야 하다니, 참 귀찮은 일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티가 났는지, "그 습도가 사람이 지내기에도 딱 적합한 정도예요."라고 엔지니어님이 덧붙이셨다. 그리고 그 말이 내게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새삼 기타라는 물건의 아날로그함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기 적합한 온도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물건이라는 게, 생각해보니 멋졌다. 관리를 안 하면 뒤틀고 녹슨다는 건 꽤나 귀찮은 속성이지만,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그 물건을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기타 셋업 비용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새 줄 값, 레몬 오일 값, 그리고 엔지니어님의 인건비, 그렇게 계산하면 충분한 비용인데, 그에 더해, 기타 셋업 과정을 보면서 느낀 쾌감에, 기타 관리 지식을 전수받은 것, 그리고 기타의 아날로그함에 대한 상기까지, 값을 지불할 수 없는 것들을 받고 기타 샵을 나왔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자주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아홉에 쓴 일기를 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